공유하기
입력 2001년 5월 17일 18시 34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70년대 히피운동서 시작▼
유기농법은 원래 1970년대에 히피문화운동의 일부로 시작되었다. 히피문화의 핵심이 기성체제에 대한 저항이었으므로 유기농법이란 말에도 저항의 의미가 깊게 배어 있었다. 즉 거대하게 산업화된 당시의 농업시스템에 맞서 가족단위의 소규모 농장에서 환경에 피해를 주지 않는 방법으로 농산물을 길러 기존의 농업 및 식품산업을 개혁하자는 취지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유기농 제품을 내놓는 기업들이 이미 거대한 산업을 형성하고 있다. 그들에게 농산물을 제공하는 농장들 역시 가족단위의 소규모가 아니다. 이들이 살충제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농사법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유기농법’의 이미지에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캘리포니아의 유기농 농장들은 산업화된 다른 농장들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린웨이스 오개닉이라는 농장을 살펴보자. 이곳에서는 유기농 농장답게 화학비료 대신 근처의 말사육장에서 나오는 퇴비와 인간에게 이로운 곤충들을 이용해서 해충을 막고 있었다.
그러나 잡초의 성장을 억제하기 위해 땅을 자주 갈아엎는 것은 결코 유기농법의 이상에 맞는 방법이라고 볼 수 없다. 경운기로 땅을 자주 갈아엎다 보면 땅이 파괴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넓은 농장에서 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잡초를 뽑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물론 지금도 가족단위의 소규모 농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기농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은 이런 농장들과 거래를 하지 않는다. 100에이커 규모의 농장 10곳과 거래하는 것보다 1000에이커 규모의 농장 1곳과 거래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캐스캐디언 팜이라는 회사는 심지어 자체 농장의 규모가 너무 작다는 이유로 그곳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제쳐두고 멀리 칠레에서 농산물을 수입하고 있다. 이 칠레산 농산물은 미국까지 먼 거리를 여행해야 하므로 냉동상태로 운반된다.
유기농법 운동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의 이상을 생각해 보면 이처럼 ‘산업화된 유기농법’은 우선 그 말 자체부터 모순인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이제는 유기농산물을 재료로 만들었다는 인스턴트식품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유기농법이 지금처럼 산업화되기 시작한 것은 사실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국에서는 유기농법이 ‘히피들의 농사법’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1990년 농산물의 성장을 조절하기 위해 사용되는 알라라는 물질이 발암물질로 밝혀지면서 미국 중산층이 갑자기 유기농 농산물을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유기농 농산물에 대한 이상 열기는 금방 식었지만 어쨌든 이때의 일이 계기가 되어 유기농 산업은 매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며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대기업들도 너도나도 유기농 산업에 뛰어들었다. 거버스, 하인즈, 돌 등이 유기농 브랜드를 새로 만들거나 기존의 유기농 기업을 사들였다.
현재 대기업들은 자연식품을 찾는 사람들(미국 소비자의 약 10%)뿐만 아니라 이른바 ‘건강을 추구하는 사람들’(약 25%)을 겨냥하고 있다. 자연식품을 찾는 사람들보다 더 부유한 편인 건강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환경문제나 저항운동보다는 자신의 건강에 더 관심이 많다. 유기농산물로 만든 인스턴트식품이나 칼슘을 첨가한 기능성 식품이 겨냥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들이다.
유기농산물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정책도 산업적인 측면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 농무부는 처음 유기농산물에 대한 기준을 정할 때 유기농법의 의미를 가능한 한 넓게 정의하려고 애썼다. 기존의 대기업들이 유기농 산업에 좀 더 쉽게 뛰어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유기농법이라는 말이 소비자들에게 이미 특별한 의미를 지닌 단어로 인식되어 있었기 때문에 ‘유기농법’이라는 딱지가 붙지 않은 다른 농산물이 오히려 외면을 당할까 우려한 때문이기도 했다.
그 결과 1997년 농무부가 발표한 기준에서는 유기농산물 생산과정에서 유전자조작과 방사능 살균법을 사용하는 것까지 허용되었다. 그러나 유기농 농민과 소비자들로부터 분노에 찬 항의가 빗발치자 농무부는 다시 원점으로 후퇴하고 말았다.
▼농무부 식품첨가제등 허용▼
농무부는 최근 새로운 기준을 내놓았다. 내년부터 효력을 갖게 될 이 기준은 대규모 농장들에 이롭게 작성되었으며 유기농 제품에 일부 식품 첨가제와 합성물질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초창기 유기농법 운동이 주창했던 이상들은 이 기준에 대부분 채택되지 않았다.
유기농법의 산업화가 유기농법을 널리 퍼뜨림으로써 환경문제에 기여했다는 점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그러나 유기농 농장들이 대형화되면서 소규모 농장들은 갈수록 설자리를 잃고 있다. 수십년 동안 싼 농산물 가격 때문에 고초를 겪은 미국 농민들에게 유기농산물은 이윤을 올릴 수 있는 틈새시장을 제공해 주었다. 그러나 농민들은 이 시장에서도 또 다시 대형 농장들과 싸워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 때문에 일부 소규모 농장들은 ‘진정한 유기농법’을 주장하며 다른 유기농 농장들과 거리를 두려 하고 있다. 이들은 전국시장 대신 농장 근처의 지역에만 물건을 공급하며 신선함과 품질을 강조한다.
유기농법은 단순한 농법이 아니라 이상이기도 하다. 요즘의 광우병 파동과 구제역 사태를 보면 공장식으로 운영되는 산업화된 농업에 반기를 들었던 초창기 유기농법 운동가들이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번 취재를 마친 후 필자는 대기업이 생산한 유기농 제품을 슈퍼마켓에서 사는 대신 근처 농장에서 야채와 유제품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http://www.nytimes.com/2001/05/13/magazine/13ORGANIC.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