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일영/'6功 5過' 국민이 공감할까

  • 입력 2001년 5월 13일 18시 53분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 3년 3개월을 자평(自評)하면서 '6공(功)5과(過)론'을 내놓았다. 인권성장, 환란극복, 정보화, 남북정상회담, 4대 개혁의 틀 마련, 4대 보험 실현 등 여섯 가지는 잘한 일이고, 정치불안과 경제불안, 소외계층문제, 지역감정, 남북관계 정체 등 다섯 가지가 문제점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자평은 겸허한 반성 속에서 '개혁과 전진'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두 가지 점에서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이러한 평가가 민주당의 내부비판에 대한 대응으로 나왔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평가의 내용에 국민들이 과연 얼마나 공감하는가의 문제이다.

지난 주 민주당 내부에서는 오랜만에 말의 봇물이 터지기라도 한 듯 여러 가지 자기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개혁피로감, 개혁정비 또는 개혁마무리 등의 말들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대통령의 통치스타일과 국정운영 시스템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가 나오기 무섭게 청와대는 개혁지속론을 내세우고 나오면서 당의 비판적 목소리를 제압했다. 6공5과론 은 현정부의 잘잘못을 모두 인정하면서도 개혁의 지속에 무게의 중심을 두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당내의 비판 목소리에 대한 대통령 자신의 대응으로 보인다.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비판과 반(反)비판의 내용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청와대와 대통령이 비판에 대해 보이는 경직되고 과민한 태도가 문제이다. 개혁이 소리만 요란하고 쓸데없이 벌려놓기만 했지 제대로 된 것이 없다는 여권 지도부의 자기비판은 그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현장에서 부딪히는 국민의 소리를 전한 것이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야당이 아닌 여당의 내부 토론과정에서 나온 이런 목소리를 제대로 수용하지 않고 과민반응을 보인다면, 그것은 현재의 통치 시스템이 심각한 언로장애 내지는 동맥경화를 겪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한편 '6공 5과'라는 대통령의 자평은 그 내용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 국민들의 체감지수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듯 하다. 현 정권의 개혁성과에 대한 국민들의 채점결과는 4·26 재보선에서의 민주당 참패나 최근 민주당의 자체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민주당 지지율의 급속한 하락 등으로 이미 나타났다. 이렇게 본다면 국민들이 작성한 성적표와 대통령이 스스로 만든 성적표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는 것이다.

개혁에는 분명 불편함이 뒤따르고 국민들은 이러한 불편을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국민들이 모두 반개혁론자는 아니다. 4대 개혁이 실질적으로 진행되어 현재와 같은 경제불안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4대 보험이 제대로 실행되어 국민연금이나 의료보험 재정파탄과 같은 문제가 터지지 않았다면, 정치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져 오늘날과 같은 정치불안이나 지역감정 이용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다면, 국민들은 어느 정도 개혁의 고통을 감내할 각오도 되어 있다. 그러나 개혁이 말만 요란하고 성과는 없다 보니 그에 대한 국민들의 채점표도 인색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대통령의 자평에는 중요한 것이 하나 빠져 있는데, 그것은 오늘의 위기를 초래한 근본 원인에 대한 자기성찰이다. 현 위기의 근저에는 정치불능이 자리잡고 있고, 그것은 야당과 대화하기 보다는 3당 정책연합을 통해 정국을 이끌어 가려 하는 현 정권의 독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점을 도외시하고는 오늘의 위기를 돌파할 수 없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이 점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따라서 지난 주 민주당의 내부비판에서도 이 점이 지적된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정권 핵심부의 반응은 면박에 가까웠다.

진단이 정확해야 올바른 처방이 나올 수 있고, 병도 고칠 수 있다. 현재의 위기에 대한 정권의 평가와 진단은 지나치게 안일하고 자의적이다. 그래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고, 성공한 대통령도 나올 수 없다. 국민들은 더 이상 퇴임 후 불행해지는 대통령을 원치 않는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현 정권은 언로를 열고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바란다.

김일영(성균관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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