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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5월 6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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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닥 등록 예정기업인 H사의 대주주 겸 대표이사인 L씨는 요즘 고민이 많다.
등록 예비심사를 청구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얼마전부터 “주가를 관리해 주겠다”며 찾아오는 사람들이 몇 생긴 것이다. 보유주식을 싸게 넘겨주면 코스닥 시장 등록 이후에 주가를 올려주겠다는 것.
| ▼글 싣는 순서▼ |
| (상) "등록직후 주가 띄워드릴께요" 유혹 (하) 실적 뒷전…작전에 춤추는 주가 |
주가가 오르면 대주주 입장에서는 그보다 좋을 것이 없다. 브로커들도 넘겨받은 주식을 비싼 값에 처분할 수 있게 돼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라는 게 그들의 설명.
눈 딱 감고 ‘작전’에 동참해 한몫을 챙겨야 할지, 아니면 기업가의 정도(正道)를 걸어야 할지 L씨는 고민중이다.

▽“주가관리 컨설팅 좀 받으시죠”〓현재 등록기업의 주가관리 브로커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주로 증권사 객장 브로커나 사채업자, 투자자문사, 사이비 벤처기업가 등. 이들은 통상 등록예비심사를 청구한 기업에 접근한다.
올들어 등록예비심사를 청구한 기업 10곳의 주식자금 담당자를 대상으로 본보기자가 전화취재해봤다. 그 결과 8개 업체가 브로커의 제의를 받은 적이 있으며 그 횟수도 모두 2차례가 넘는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이들은 “브로커의 제의를 거절했다”고 말했다. 이 말의 사실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A증권사 객장 브로커 출신인 K씨(34)는 “심사청구기업 리스트가 나오면 해당기업의 최고경영자(CEO)나 자금담당자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주가 관리 컨설팅을 해주겠다고 제의한다”며 “일부 양심적인 대주주를 제외하고는 대개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브로커에게 일을 맡기게 된다”고 말했다. ‘낙찰’받은 브로커는 통상 대주주가 차명으로 분산해 놓은 주식의 일부(통상 30만∼50만주)를 공모가보다 싼 가격에 넘겨받는다는 것.
기업주가 브로커의 제의를 받아들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이들이 주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기업가치가 오른 틈을 타 차명계좌로 보유중인 주식을 고가에 팔 수 있기 때문. 등록심사를 청구한 K벤처기업의 CEO는 “대주주 지분은 심사청구 6개월 전부터 매매가 불가능하고 등록후에도 2년간 보호예수로 묶이게 돼 증자 등에 참여할 자금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대주주들이 브로커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도 자금난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주가 조작 수법〓일단 대주주로부터 넘겨받은 주식은 펀드매니저와 객장브로커, 사채업자가 운영하는 ‘부티크’ 등에 분산된다. 당국의 감시망을 피해 시세를 조종하기 위한 조치. 이들은 작전주도세력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시세차익을 챙기게 된다.
등록기업의 주가관리를 한 적이 있다는 한 브로커 H씨(35)는 “코스닥 시장은 아직 비합리적으로 주가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등록기업의 주가는 전적으로 어떤 세력이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여러 세력들과 끈끈한 인맥을 쌓고 있는 브로커는 적발위험 없이 공모가의 3배 이상까지 주가를 올린다”고 귀띔했다.
등록기업의 주식을 다량으로 확보하고 있는 기관들도 작전세력이 주가를 올려주겠다고만 통보하면 물량을 내놓지 않아 주가조작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게 된다고 이 브로커는 말했다. 주식을 싼 가격에 불하받은 공모세력들은 당초 등록기업에서 물량을 받아온 브로커에게 이익금의 일정부분을 떼어주는 것이 관례.
등록후 주가가 수일간 상한가를 기록, 공모가보다 2∼3배 오르면 이 때부터 미리 준비한 시나리오에 따라 물량을 내놓게 되고 개인들이 이를 받아가게 된다. 시간이 지나 주가거품이 빠지면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투자자의 몫으로 돌아온다.
<박정훈기자>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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