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아의 책사람세상]모성 외면하는 국가권력

  • 입력 2001년 4월 27일 19시 06분


모성(母性)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미래를 보호하기 위해 당연히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여성의 생식과 출산 능력이 국력과 직결된다는 생각의 역사는 깊다.

플라톤은 ‘국가’(서광사·1997년)에서 유토피아를 상상하면서, 여성이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여성도 운동으로 체력을 키울 것을 권장한다.

유년기의 교육에도 관심을 기울여, 어렸을 때 잠자리에서 무섭거나 허황한 이야기를 하는 유모나 하인은 내쫓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훌륭한 아이를 낳기 위해 한 계급의 여성은 그보다 하층인 계급의 남성과 성관계를 가져서는 안된다고 말함으로써 우생학적 사고의 씨를 뿌리기도 했다.

생식과 출산에 대한 악몽을 다룬 소설들도 많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문예출판사·1998년)는 이미 1932년 공장에서 어릴 때부터 세뇌교육을 받으며 길러지는 아이들을 그리고 있다.

그의 ‘멋진 신세계’에서는 여성이 출산할 필요가 없고, 모든 아이들은 공장에서 생산되며, 계급에 따라 아이들의 유전자는 달라지고 받는 교육도 차별화 된다.

반대로 캐나다 작가 마가렛 애트우드의 SF소설 ‘핸드메이드’(청담사·1991년)는, 핵전쟁 이후 대부분의 여성이 불임이 되었다는 상상으로부터 출발한다.

강력한 가부장제 국가가 세워지고, 불임 문제의 해결책으로 국가는 가임 여성들을 집단적으로 관리하며, 그들의 인권을 마음대로 유린한다. 가임 여성은 아이를 낳아주기 위해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상류층 가정에 대여되며, 출산 이후 아이에 대한 어떤 권리도 가질 수 없다. 여성으로서는 최악의 디스토피아를 그린 셈이다.

이런 책들의 공통점은, 모성이 단지 개인의 것이 아니라 국가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통찰하고, 그에 따른 전망과 문제점들을 그려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모든 기업이 없어지고 모두 전근대적 생활양식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어찌저찌 살 수는 있겠지만, 여성이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지 않으면 국가가 지탱되겠는가? 여성이 경제적 주체로 나서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적 추세로 여겨진다.

따라서, 경제적 주체로 나선 여성이 있는 가정이 과중한 짐을 지지 않도록 하는 배려 또한 국가가 국민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인 셈이다.

하지만 이 ‘당연한 배려’를 국가가 거부한다면, 여성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남성들이 벌인 어리석은 전쟁을 끝장내기 위해 양쪽 진영의 여성들이 성(性) 파업을 벌이는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뤼시스트라테’(‘아리스토파네스 희극’·단국대출판부·2000년)를 본 따 2년 동안 아기를 하나도 출산하지 말아야 할까? 자기 자식 다 키워놓았다고 일하는 여성들을 차갑게 외면하는 정치인들의 행태가 답답하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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