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영언/前대통령

  • 입력 2001년 4월 27일 18시 32분


어제 아침 신문 국제면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공금횡령 등 혐의로 체포된 조지프 에스트라다 전 필리핀 대통령이 경찰본부안 독방 간이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이다. 침대옆에 벗어놓은 구두 두쪽이 처량함을 더했다. 그는 두손으로 머리를 감싼채 무엇인가 골똘한 생각에 잠겨 있는듯 했다. 아마도 화려했던 옛 시절을 떠올리거나 누군가를 원망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잠자리가 영 불편했다. 에어컨은 작동안되고, 음식은 플라스틱통에 담겨 나온다" 며 특별대우를 해주지 않은데 대해 울분을 터뜨렸다고 한다.

▷지구촌은 지금 전직대통령들의 수난시대다. 카를로스 메넴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무기밀매에 간여한 혐의로 검찰로부터 소환장을 받았다. 페루의 반부패 특별검찰은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대통령을 부정부패혐의로 법정에 세울것이라고 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재수감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대통령은 고혈압으로 감방에서 고통을 겪고 있다. 부패스캔들로 사임압력을 받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압두라만 와히드 대통령이 조만간 이 대열에 합류할지 모른다.

▷에스트라다의 사진속에 우리의 두 전직대통령이 겹쳐진다. 몇 년전 수의(囚衣)를 입고 재판정에 섰던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전대통령의 모습이다. 이들 두분과 지금 수난을 겪고 있는 외국의 전직대통령들의 생각은 비슷할 것이다. 모두들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에스트라다의 표현)는 것일게다. 현직으로 잘나가던 시절 그들이 그리던 미래속에 결코 감옥같은 것은 없었을 테니까.

▷권력에 취하면 지도자들은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을 정확하게 보지 못한다. 주변의 충고도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국민들은 지도자들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세상이 됐다. 인터넷의 발달도 국민들의 부패권력 감시에 큰도움을 주고 있다. 권력을 남용하는 지도자들의 설자리가 그만큼 좁아진 것이다. 권력을 갖고 있거나 이를 꿈꾸는 사람은 그래서 한때의 갈채가 어느 순간 원성으로 바뀌어 자신을 겨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야한다.

<송영언논설위원>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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