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노다리 시모니야/미국이 ‘햇볕’ 가릴 줄이야

  • 입력 2001년 4월 25일 18시 25분


2000년 6월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나는 이것이 역사적인 사건이며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역사의 전환점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북(對北) 포용정책’의 진행은 복잡하고 그 과정에는 적지 않은 어려움과 방해가 있을 것이며 일시적으로 후퇴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해 왔다.

▼NMD추진위해 北위협 과장▼

유감스럽게도 1년이 지나지 않아 이 예언은 들어맞았다. 사실 나는 포용정책에 대한 위협이 미국으로부터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많은 서방 신문들이 쓴 것처럼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북한에 대해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이전의 빌 클린턴 행정부가 시작한 북한 지도부와의 대화 계승을 거부함으로써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시작했던 햇볕정책에 찬물을 끼얹었다. 부시 대통령은 갑자기 북한 체제가 ‘적’이라는 사실을 세계 만방에 알리기로 결심한 듯하다. 하지만 그런 북한 체제의 적대감과 위협적인 요소를 점차 줄여나가고 결국에는 완전히 없애버리기 위해서 포용정책과 햇볕정책, 그리고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접근정책 등이 필요했던 게 아닌가.

부시 행정부는 1972년 소련과 체결한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에서 탈퇴하기 위해 ‘북한의 위협’을 들고 나왔다. 북한이 미국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주장은 믿기 어렵고 우습기까지 하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상상력이 필요하다. 국가미사일방어(NMD) 체제는 중국을 의식한 것인데 초강대국인 미국으로서도 직접적으로 중국을 겨냥하기가 어렵자 북한을 핑계로 댄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의 이익과 남북 대화,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희생시키기로 결심했다.

부시 행정부는 김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가혹한 압력을 넣었고 북한의 부정적인 반응을 유도해냈다. 그 결과로 대화는 사실상 중단됐고 5, 6월로 기대됐던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서울답방도 불투명해졌다. 북한은 오사카에서 열리는 세계탁구대회에 남북 단일팀 출전 합의를 취소했고 이산가족 추가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도 거부했다. 북한 지도부는 미사일 개발을 재개하고 핵 개발 동결도 취소하겠다고 위협하고 나섰다.

부시 대통령의 ‘신(新) 현실주의 정책’은 지금까지 이룬 성과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자칫하면 원점에서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할 상황이다. 햇볕정책도 큰 타격을 받았다.

햇볕정책이 한국보다는 북한에게 유리하다는 주장이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햇볕정책으로 일시적이고 전술적인 이익을 보기를 원한다면 “아예 이 정책에 대해서 잊어버리라”고 강조하고 싶다. 이 정책의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목적은 분단된 한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 한반도 정책은 유럽연합(EU) 같은 동맹국의 이해도 얻지 못하고 있다. 유럽인들은 유럽의 한 신문이 표현한 것처럼 ‘골목대장 부시’(bully Bush)의 정책 때문에 한반도의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유럽은 남북한 사이의 중재와 평화정착 노력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5월 초 EU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한다. 북한과 EU는 외교관계와 경제분야의 접촉을 늘리고 있다.

▼눈앞 손익에 연연해서야▼

한반도와 관련해 러시아는 두 가지의 변함 없는 입장이 있다. 첫째는 통일은 당사자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러시아는 통일과 이를 위한 필수조건 조성을 위해 협력할 모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 원칙을 갖고 지난해와 올해 북한과 한국을 각각 방문했다. 북한 방문은 미국의 접근정책을 활성화시켰고 햇볕정책에도 자극을 주었다. 한국 방문에서는 남북한과 러시아의 삼각협력 문제를 논의했다.

러시아는 동북아시아의 경제협력 심화가 안보와 평화에 도움을 준다고 보고 있다. 남북한 종단철도와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연결이나 이르쿠츠크 가스전사업 등은 한국과 러시아의 국익에도 맞고 미국이나 일본의 자본을 참여시키는 지역협력의 토대가 될 수 있다.

노다리 시모니야(러시아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 소장)imemons@online.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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