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인터뷰]<휴머니스트>의 '휴머니스트들'

  • 입력 2001년 4월 24일 14시 30분


<휴머니스트> 시사회장을 막 빠져 나온 기자 및 평론가들의 표정은 한마디로 어정쩡했다. "비틀어진 구도와 엽기적인 취향으로 도배된 이 '독특한 물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들의 얼굴에선 당혹스러움이 적잖이 흐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엽기 코미디 <휴머니스트>는 일반적인 영화 문법과는 완전히 다른 지점에서 첫 단추를 낀 영화다. "임산부가 조심해야 할" 구역질 나는 장면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영화 속에서 한 번도 목격한 적 없는 독특한 악당들이 변태적인(?) 행동을 일삼는다.

수녀를 겁탈하려는 머저리 아베마(박상면), 아버지를 납치해 한몫 잡아보려는 귀공자 아들 마태오(안재모), 귀공자 친구의 뒤통수를 치려다 덜미가 잡힌 3류 화가 유글레나(강성진). 이들은 각각 어린 시절 머리를 다쳐 지능이 모자라거나 강아지에게 '고추'를 물려 고자가 된 비참한 기억을 갖고 있다. <휴머니스트>는 이런 허무맹랑한 각자의 사연들을 때론 만화 커트로, 때론 재현 방식으로 비틀고 꼬아버린다.

제목에서 풍겨져 나오는 따뜻한 '휴머니즘'의 정서는 거의 없다. 이무영 감독의 시선은 돼지우리에서 목매달고 자살한 자신의 모습을 라스트신으로 설정한 데서 알 수 있듯 일견 냉소적이다. 이것은 과연 기존 영화에 대한 반항일까, 아니면 치기 어린 장난에 불과한 것일까.

시사회 직후 <휴머니스트>를 연출한 이무영 감독,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안재모 강성진 박상면 명순미를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무영 감독 인터뷰]

<휴머니스트>엔 추잡한 사회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이 많이 묻어있다.

-내가 원래 좀 냉소적이다. 이런 생각은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이 영화엔 여러 유형의 인간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을 모두 섞어놓은 인물이 바로 내 모습이다.

연출 뿐 아니라 연기도 맡았는데 특별히 배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연기는 정말 내가 재미있어서 한다. 이전에도 친한 감독들의 영화에 간간이 출연한 적이 있다. 앞으로도 배우 시켜주면 열심히 할거다.

안재모는 선한 이미지를 가진 배우다. 어떻게 이런 악당 역으로 캐스팅하게 됐나?

-선한 이미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 역에 캐스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머니스트>에서 그는 드러내놓고 악을 저지르는 인물이 아니다. 실제론 악을 저지른 적이 거의 없는 독특한 악당이다. 안재모는 TV 사극에서 강한 이미지를 심어준 적이 있는데 난 그 드라마 속의 안재모가 마음에 들었다. 아버지 납치를 사주하는 마태오 역을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 영화에 캐스팅하게 됐다.

돼지우리 속에서 목매달고 자살한 마지막 시퀀스는 아주 인상적이다. 이 장면을 통해 당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가?

-나도 이 돼지우리처럼 추잡한 세상에 일조한 인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영화 속에서나마 단죄해본 것이다. 자기를 더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었다.

감독이 팝 칼럼니스트 출신이어서인지 음악이 참 독특하다.

-모든 장르와 시대를 뛰어넘어 영상에 어울리는 음악들을 주로 골랐다. 개중엔 팝송도 있고 트로트도 있고 옛날음악도 있고 요즘 음악도 있다. 난 그런 '퓨전' 양식을 좋아한다. 앞으로도 내 영화의 음악은 '퓨전' 양식으로 선곡할 생각이다. 시나리오 쓸 때부터 영화음악을 미리 선곡해 놓았는데, 내가 생각했던 음악들이 모두 영화에 삽입됐다. 각 장면에 너무 어울리는 음악들이었기 때문에 교체할 이유가 없었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나?

-사회적인 이야기들, 사회 속에 묻혀진 이야기들을 꾸준히 해보고 싶다. 그 이상의 바람은 없다.

[배우 일문인답]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느낌은?

안재모-첫 느낌은 아주 부담스러웠다. 한마디로 감정표현에 대한 '그림'이 안나왔다. 내가 맡은 마태오 역은 튀는 성격도, 그렇다고 아주 드러난 내면을 갖고 있는 캐릭터도 아니었다. 게다가 마태오는 영화 속에서 또 '연기'를 해야하는 캐릭터기 때문에 이중으로 연기하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캐릭터를 만들어 놓고 시작한 게 아니라 연기를 하면서 점점 캐릭터를 완성해나갔다.

<주유소 습격 사건> 이후 오랜만에 출연한 영화인데 왜 이 영화를 차기작으로 골랐나?

강성진-<주유소 습격 사건>에 출연한 후 '딴따라' 이미지에 어울리는 역할만 주로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다. 그러면서 14개월이 흘렀다. 난 좀 '센' 역을 맡고 싶었는데 그러던 중 <휴머니스트> 시나리오를 보게 됐다. 여기서 내가 연기한 '유글레나'는 <주유소 습격 사건>의 '딴따라'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미지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난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독특하고 신선했다. 아쉬운 점도 많지만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똥물을 세 바가지나 들이키는 장면은 연기하기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박상면-내가 아무리 비위가 좋다고 해도 그 장면은 정말이지 비위가 많이 상했다. 된장 풀어서 똥물 색깔을 냈는데 먹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맛이 상당히 안 좋다. 구토까지 하면서 촬영한 신이다. 나중엔 생각 끝에 커피를 엷게 타서 마셨다.

사투리 쓰는 수녀 역을 연기했는데 전라도 사투리 연기가 아주 자연스럽다.

명순미-난 서울 토박이라 처음엔 전라도 사투리가 어떤 건지도 몰랐다. 감독님이 조언을 많이 해주셔서 용기를 얻었고 편하게 연기했다. 이 역을 맡고 난 후엔 전라도 사투리 쓰는 택시 운전사만 봐도 이것저것 물어보고 그랬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황희연<동아닷컴 기자>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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