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윤리가 경쟁력이다-3]'윤리기업' 만드는 美평가 시스템

  • 입력 2001년 4월 9일 18시 55분


1980년대 ‘워크맨’으로 대표되는 일본상품의 품질에 밀려 고전하던 미국이 어떻게 1990년대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으로 다시 떠올랐을까.

많은 경영학자들은 정보기술(IT)산업을 앞세운 '신경제’의 도입과 함께 미국 대통령이 매년 수여하는 ‘맬컴 볼드리지 국가품질상(Malcolm Baldrige National Quality Award)’을 그 이유로 꼽는다. 맬컴 볼드리지상(MB상)은 미국 기업의 ‘종합적 품질경영’(TQM) 수준을 끌어올려 유명해졌다.

하지만 이 상의 평가기준 중 ‘기업 윤리’에 대한 항목이 가장 큰 몫을 차지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글 싣는 순서▼
1. 존슨&존슨
2. 3M
3. 美 기업평가 시스템
4. 다국적 기업 나이키
5. 사우스웨스트
6. 조지아 퍼시픽 펄프공장
7. 네슬레
8. 노키아
9. 살로먼스미스바니증권
10. 전문가 좌담-독자 반응

▽볼드리지상이란〓1987년 레이건 행정부의 상무장관을 지낸 고(故) 맬컴 볼드리지의 제안으로 행정부와 의회가 합심해 만들어낸 상. 경제분야에 취약성을 드러냈던 레이건 대통령 최대의 ‘경제적 치적’으로 꼽힌다.

10년 이상 역대 대통령의 적극적 지원을 받으면서 이 상은 미국 기업에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로 떠올랐다. 효율성과 윤리성에서 성공적인 기업을 국가가 나서서 칭찬함으로써 성공적 경영기법과 기업문화를 다른 기업에 교육하는 성과를 올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모토로라 제너럴모터스(GM) 제록스 IBM 3M 등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쟁쟁한 기업들이 역대 수상기업.

지난해 11월21일 클린턴 대통령이 퇴임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MB상 수상기업을 선정해 발표하면서 덧붙인 연설을 보면 이 상에 담긴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볼드리지상은 미국의 국가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경쟁력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기업들을 제대로 평가하고 있다. 수상기업들은 앞서 나가고자 하는 기업들의 모델이 돼야 하며 다른 기업들은 이 기업들을 따라 배워야 한다.”

▽MB상과 기업윤리〓이 상은 1000점 만점으로 △고객지향의 품질 △리더십 △사회적 책임과 시민정신 △종업원의 참여 및 개발 △결과중심의 경영 등을 평가한다. 제조업 서비스업 중소기업 등 3개 분야로 나눠 시상하며 수상기업 중에도 800점 이상의 고득점을 받은 기업은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립표준기술원(NIST)과 MB상재단 등이 ‘민관협력’ 형태로 운영하는 이 상의 기업윤리 측정수단은 평가항목 곳곳에 숨어있다. 리더십 분야 가운데 사회적 책임과 시민정신, 기업의 ‘효과성’ 측면에서 사회적 책임에 따른 결과, 종업원에 대한 처우, 협력업체와의 관계, 환경 및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 등 평가항목 중 30%이상이 ‘기업윤리 수준’을 묻는 내용들. 미국의 대표적 기업들은 매년 이 상에 도전해 ‘재수’ ‘삼수’를 하면서도 이 상이 요구하는 ‘경영품질’의 수준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영품질의 세계기준, 맬컴 볼드리지’라는 책을 펴낸 경희대 경영학부 서영호교수는 “볼드리지상을 제정할 때 미국은 일본의 국가품질상인 ‘데밍상’을 참고했지만 일본의 상이 제품의 품질에 집중한 반면 MB상은 ‘기업윤리’ 항목을 대폭 채용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제품의 품질은 여전히 세계제일이지만 기업문화의 후진성 때문에 성장의 벽에 부닥친 일본기업과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미국기업의 차이가 어디서 생겼는지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MB상 수상기업은 가장 효율적인 동시에 가장 윤리적인 기업으로 인정받는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이 상을 받은 기업의 주식을 사면 미국의 대표적 주가지수중 하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지수에 들어있는 다른 평균적 기업보다 평균 3배의 수익률을 올린다는 분석기사를 실어 ‘기업윤리’와 기업의 성과 사이의 상관관계를 입증하기도 했다.

▽윤리적인 기업은 사회가 만든다〓미국에는 볼드리지상 외에도 비영리단체인 ‘경제최우선협의회(CEP)’가 매년 선정하는 ‘양심기업상’, 경제 격주간지 ‘포천’과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이 매년 발표하는 ‘가장 존경받는 기업’ 등의 제도를 통해 사회적으로 윤리적 기업을 칭찬하는 시스템이 활성화돼 있다.

한국에서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산하 경제정의연구소가 1991년부터 매년 중요기업들의 경제정의지수(KEJI지수)를 발표하고 ‘경제정의기업상’을 선정하고 있다. 한국표준협회가 주관하는 ‘한국품질대상’은 최근 MB상의 시스템에 맞춰 개편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앞장서 효율적이고 윤리적인 기업을 선정해 ‘국가적 이벤트화’하는 MB상과는 큰 거리가 있는 것이 현실.

경제정의연구소 전병화 부국장은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과 체질을 강화한다는 차원에서도 탁월한 성과를 보임과 동시에 기업윤리를 충실히 이행하는 기업들을 발굴해 칭찬함으로써 다른 기업들이 보고 따르도록 하는 국가적, 사회적 시스템을 서둘러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중현기자>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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