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월드/英 구제역 현장 르포]동물원 가축 불태우고 채식으로

  • 입력 2001년 4월 8일 19시 01분


7일 오후 영국 런던 시내의 빅토리아 기차역 앞 맥도널드 햄버거점. 구제역이 발생하기 전인 2월 초까지만 해도 주말 오후면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차던 자리가 반 넘게 비어 있다. 한 종업원은 “검역을 거친 안전한 고기로 햄버거를 만들었다고 설명해도 손님들의 불안이 가시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체인 레스토랑인 앨버트의 한 종업원은 “돼지고기를 메인 메뉴로 만들지 않은 지 오래”라며 “닭고기나 카레라이스를 메뉴로 내놓지 않으면 발길이 끊긴다”고 털어놓았다. 육류가공업체 페어팩은 3월 매출액이 다른 달에 비해 25% 가량 줄었다고 밝혔다.

2월 중순 영국에서 구제역이 발병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면서 고기를 기피하는 영국인이 크게 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ICM은 구제역 발병 이후 150만여명이 채식으로 전환해 전 인구의 9%인 600만명이 채식인구가 됐다고 밝혔다. 구제역 집단발병 사례는 4일 현재 1000건을 넘어섰다.

구제역은 영국 경제에도 주름을 주고 있다. 테마파크 앨톤타워스 등의 동물원에서 가축들을 도살하고 컴브리아 등지에서는 곳곳에서 도살된 가축을 태우는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어 특히 매우 큰 수입원 중 하나인 관광산업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영국 문화관광부는 3월 전국의 관광수입이 전달에 비해 10% 줄었으며 컴브리아와 데번 지방의 경우 75%나 줄었다고 밝혔다.

부동산 시장도 타격을 받고 있다. 런던 남부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한 한국인 교포는 “전원주택을 찾는 이들이 뚝 끊겼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는 구제역 퇴치와 관련해 보상금 등으로 30억파운드(약 6조원) 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7일 현재 구제역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도축 대상으로 지정된 가축이 200만마리를 넘어섰으나 일단 구제역의 확산은 한풀꺾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정부는 구제역 검역과 역학 조사, 도살 등을 위해 현재 매일 수의사 1500명, 도축사 320명, 군인 1750명을 투입하고 있다. 영국 정부의 수석과학자문관인 데이비드 킹 교수는 “구제역의 신규 발생이 하향 추세로 돌아섰다”며 “6월쯤 되면 상당히 진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노동당 정부는 총선을 눈앞에 두고 있어 이만저만 고민이 아니다. 구제역 때문에 최근 총선 일자를 5월에서 6월로 연기한 토니 블레어 총리는 다소 걱정은 되지만 그래도 노동당이 45% 이상을 얻어 무난히 승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가디언지의 마이클 화이트 정치부장은 “국민 통합을 원하는 블레어 총리는 ‘이르지만 씁쓰레한 승리’보다 ‘늦더라도 달콤한 승리’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권기태기자>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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