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모노드라마 준비하는 세 남자 이야기

  • 입력 2001년 4월 3일 18시 54분


◇"일생일대의 기회이자 모험"◇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40대 세 남성이 요즘 대학로에서 매일 만난다.

‘경마장 가는 길’ 등 경마장 시리즈와 ‘진술’ 등으로 논쟁과 화제의 중심에 섰던 소설가 하일지(48). 그의 옆에는 아무리 인상을 써도 무섭지 않은 연출자이자 배우 박광정(41)과 웃고 있어도 심각해 보이는 배우 강신일(42)이 있다.

이들은 거의 매일 오후 서울 동숭아트센터 5층에 마련된 연습실에서 뭉쳐 자장면 그릇을 비우고 있다.

20일부터 같은 극장의 소극장에서 공연되는 하일지 원작, 각색의 모노드라마 ‘진술’.

지난해 소설로 출간된 이 작품은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사랑을 화제가 됐다. 처남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대학교수가 하룻밤 동안 형사에게 진술하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세 남성은 이 작품을 85년까지 공연된 고 추송웅의 ‘빨간 피터의 고백’의 뒤를 잇는 최고의 모노드라마로 만들겠다고 벼른다.

하일지에게는 첫 연극 작업이다. 연출자인 박광정은 TV 영화 연극을 누벼온 ‘리베로’ 경력 탓에 비평에서 손해를 봤다며 이번 작품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겠다고 주장했다.

20년 경력의 중견 배우 강신일은 “일생일대의 기회이자 모험”이라며 출사표를 던졌다. 지난달 30일 연습실에서 세 남성의 ‘진술’을 받았다.

공연은 6월10일까지 평일 오후 7시반, 토 오후 4시 7시반, 일 오후 4시. 2만원. 02―3676―4413

◇20일부터 동숭아트센터 공연◇

하일지〓(소설에 표현된 것처럼) ‘사랑은 어떤 대상에 대한 과장된 심리의 지속’ 아닐까요. 주인공의 캐릭터는 차가운 지식인이면서도 사랑에 대한 열망이 강한 인물입니다. 절제된 표현으로 두 가지가 함께 그려졌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소설이 아닌 연극은 이미 연출자와 배우의 것입니다.

박광정〓(강신일을 보며)이번 공연이 성공하면 재공연에서는 원작에 맞춰 8시간짜리 모노 드라마로 만들어 배우를 행복하게 ‘죽이고’ 싶습니다(웃음).

강신일〓…. 메피스토펠리스로 출연한 ‘파우스트’의 공연 시간이 4시간이었습니다. 그 때는 배우들이나 많았죠. 지금 마치 끝이 안보이는 바다 앞에 홀로 선 소년같은 심경입니다.

하일지〓원래 연극의 원형은 모노드라마입니다. 희랍 연극사를 봐도 초창기는 다 1인극이었으니까. 우리 판소리도 1인극이죠. 2인극은 한참 뒤에 나왔고 소포클레스 시기가 되어서야 3명의 배우가 등장합니다.

박광정〓어쨌든 모노드라마는 ‘배우의 무덤이자 자살행위’라는 말도 있습니다.

강신일〓그렇지만 무대에 서는 건 혼자이지만 혼자만의 무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작품에도 한명의 배우를 위해 20여명의 스탭이 뒤에 있습니다.

하일지〓원작과 희곡의 구성은 거의 같지만 1시간40분쯤으로 압축해 각색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까워서 피가 마르더군요.

박광정〓TV 출연으로 얼굴이 팔려 사인 공세를 받지만 연극동네에 오면 ‘아르바이트생’ 취급을 받아 손해를 봅니다. 이번 작품은 마임이나 노래 등 관객의 지루함을 덜어주는 볼거리가 전혀 없습니다. 거의 움직임이 없는 가운데 절제된 표현으로 내면의 세계를 담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관객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강신일〓최근 집사람과의 대화가 뚝 끊겼습니다. 내가 요즘 워낙 심각한 표정이라…. 모노드라마로 55회 공연이라 힘들겠죠. 더블 캐스팅 얘기도 나왔지만 혼자 하고 싶습니다. 그게 무대에서 죽는 것이라고 할 지라도.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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