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흐르는한자]花信(화신)

  • 입력 2001년 4월 1일 19시 04분


우리나라만큼 四季節(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도 많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나름대로 제각기 색깔을 지닌다는 것일뿐 매 계절의 변화는 쉬이 느낄 수가 없다. 특히 봄은 소리 소문 없이 다가와 우리를 놀라게 한다. 하얀 눈밭에서 새파란 새싹을 보는 수가 많다.

하지만 그 봄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많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도 있고 여인의 화사한 치맛자락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봄을 ‘實感’할 수 있는 것으로는 역시 꽃이 아닐까. ‘三千里 錦繡江山(금수강산)’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산과 들에는 꽃도 많다. 과연 봄이 되면 百花가 齊放(제방·일제히 핌)하니 그야말로 千紫萬紅(천자만홍)의 壯觀(장관)을 연출한다.

자연의 攝理(섭리)에 따름인가? 蘇生(소생)의 계절답게 봄이 되면 겨우내 沈潛(침잠)되었던 우리의 視覺(시각)도 함께 깨어난다. 그래서 봄은 눈으로 맞는 계절, 여름처럼 짙푸르기만 하여 질리게 하지도 않고 가을처럼 강렬하지도 않으며 겨울처럼 단조롭지도 않다. 오히려 봄의 색은 오색비단처럼 요염하기조차 하여 새롭고 황홀하게 해 줄 뿐이다.

마치 외동딸 시집 보내듯 못내 겨울을 보내기가 아쉬워 때로 天候(천후)의 시샘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굴하지 않고 꽃은 피어 계절이 왔음을 알린다. 花信인 것이다.

信은 글자 그대로 ‘사람의 말’, 옛날 성인들은 여기에는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윤리적인 의미를 붙여 주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윤리의 장막을 한 꺼풀 걷어내고 나면 새로운 뜻을 얻을 수 있다. 옛날에 ‘사람의 말’을 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글, 곧 편지밖에 없었으니 이 때부터 信은 ‘편지’나 ‘소식’이라는 뜻도 갖게 되었다. 書信(서신)이나 發信(발신), 受信(수신), 通信(통신)이 그런 경우다. 따라서 花信이라면 ‘꽃 소식’이 되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봄이 남쪽부터 젖어오니 花信 역시 南風을 타고 올라온다. 게다가 삼천리 강토가 길게 드리웠기 때문에 지방마다 花信을 받아보는 시기도 각기 달라 남쪽 제주도에서 출발한 소식이 북녘 땅 끝까지 도착하는 데는 대체로 한 달 이상이 걸린다.

그러나 봄에 피는 꽃이 어디 한 둘이던가? 그 중 우리의 눈을 자극하는 것으로는 진달래, 개나리하며 화사한 벚꽃과 情艶(정염)을 상징하는 복숭아꽃도 빼놓을 수가 없으니 대체로 이들이 피는 것으로 花信을 삼았다.

鎭海(진해)의 軍港祭(군항제)가 막이 올랐다는 소식이다. 이제 벚꽃의 花信이 남쪽에서 출발했다. 머지 않아 연구실 창 너머로도 벚꽃을 볼 수 있으리라.

鄭 錫 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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