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25시]"또 감 떨어지기만 기다리나"

  • 입력 2001년 3월 19일 18시 57분


“황영조나 이봉주가 하늘에서 떨어졌지,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키워서 컸습니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한국 남자마라톤에 대한 한 지도자의 고뇌 섞인 말이다.

18일 끝난 2001동아서울국제마라톤에서 한국 남자마라톤은 2000시드니올림픽에 이어 또 다시 부진을 면치 못했다. 왜 이럴까.

그동안 한국마라톤은 ‘똑똑한 몇 명’만으로 이끌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황영조 이후 이봉주가 받쳐줬고 이봉주 뒤엔 김이용 정남균이 그 맥을 이어가고 있으나 이들의 컨디션이 나쁘거나 부상을 당하면 대체 선수가 없었다.

2시간10분대 이내에 드는 현역선수도 이봉주 김이용 백승도 단 3명뿐. 10분 이내의 선수가 30명에 이르는 일본을 보면 절망감마저 든다. 꿈나무라 할 수 있는 고교 선수 중 이렇다할 재목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 황규훈 건국대감독은 “요즘 아이들은 마라톤이 힘들다며 아예 하려 들지 않는다”고 한숨을 내쉰다.

손기정 남승룡 서윤복으로 대표되는 한국마라톤 1세대들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강인한 정신력이 으뜸이었다. 요즘 선수들은 조금만 힘들어도 주저앉기 일쑤라는 게 일선 감독들의 하소연.

식이요법, 고지대훈련으로 대표되는 과학적 훈련도 각 선수에 맞게 발전시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외국에선 코스, 기후가 입력된 시뮬레이션 훈련이 이미 보편화돼 있다. 자기가 뛰려는 대회 코스와 날씨 등을 시뮬레이션화해 러닝머신으로 훈련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또한 자기보다 기록이 나은 선수와의 훈련도 중요하다. 일본처럼 아프리카 선수들을 대거 수입해 훈련파트너로 활용하는 것도 적극 검토해 볼 만하다.

마라톤은 한국 스포츠의 뿌리깊은 자존심이다. 마라톤 영웅이 하늘에서 떨어지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그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길러야 할 때다.

<김화성기자>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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