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우광/일본경제 추락 남의 일 아니다

  • 입력 2001년 3월 13일 18시 37분


일본경제가 다시 위기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일본은행이 지난해 8월 경제상황을 회복국면으로 판단하고 제로금리를 해제한지 6개월만에 일본경제가 다시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광공업 생산, 수출, 실업률, 물가 같은 실물경제 지표는 물론이고 환율과 주가도 연일 새로운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구조조정 미진 정치권은 미적▼

미국경제의 감속으로 인한 수출부진, 실업률 상승으로 인한 개인소비 부진, 미진한 정보기술(IT)혁명 등도 원인으로 들 수 있지만 더욱 근본적인 것은 미온적인 기업 금융 구조조정 때문이다. 10년 동안이나 거품경제 청산을 위해 노력해 왔지만 미온적인 구조조정 때문에 경제여건이 조금만 나빠져도 ‘경제 위기설’이 고개를 내미는 것이다.

최근 회자되고 있는 일본경제 ‘3월 위기설’도 일본 은행들이 부실채권 증가로 3월 결산 시에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기준을 충족시키기 어려워져 기업들에 대한 대출금을 회수할 가능성이 크며 이로 인해 신용경색 현상이 발생하면 기업의 대량 도산으로 이어져 실물경제 침체가 빨라진다는 것이 골자다. 또 주가 하락이 지속되면 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평가손이 더욱 확대돼 위기의 진폭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일본정부는 1999년에 금융재생법과 금융건전화법을 만들어 60조엔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은행의 부실채권 처리를 서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실채권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건설 부동산 유통 등 소위 ‘거품업종’의 구조조정 미흡으로 부실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또 경기대책의 일환으로 일본정부는 은행에 대해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도 강요했다. 더욱이 은행들은 공적자금 신청시 경영책임 추궁이 두려워 공적자금을 충분히 신청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결국 문제를 미봉책으로 처리하고 구조조정을 과감하게 하지 못한 것이 일본경제 회생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일본정치도 이에 한 몫하고 있다. 정치권은 10년 동안이나 지속되는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경제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1996년 하시모토 내각에서 시작된 ‘금융빅뱅’은 아직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고, 구조조정을 촉진할 수 있는 법제를 정비하는 데도 시간을 끌고 있다. 정치권은 표를 의식하고 행정은 부처이기주의에 연연해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최근 모리 총리가 연속적인 정치 불상사로 ‘식물총리’ 상태에 빠져 ‘3월 위기설’의 현실성을 더해 주고 있다.

98, 99년 당시만 해도 재정정책을 구사할 여지는 있었다. 일본정부는 1998년 이후 64조엔의 재정자금을 투입해 경기부양에 힘썼다. 그러나 국가채무는 666조엔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30%나 되고 국제신용평가기관이 앞다퉈 국채 신용등급을 내리고 있어 다시 재정을 대량 투입해 구조조정을 추진하기도 여의치 않다. 일본 금융청은 늘어나는 부실채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까지 부실채권에 대해 대손충당금을 쌓는 간접상각 방식에서 부실대출을 소거해 버리는 직접상각 방식으로 바꿔 부실채권의 뿌리를 없애는 것을 검토중이다. 그러나 부동산시장 침체와 관련 법제 미흡으로 이를 실천하기에는 걸림돌이 많다. 향후 일본경제의 정책운용은 부실채권 처리 등 금융시스템 재생을 도모하며 실물경제에 미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과제다.

▼기업-금융 개혁 빨리 끝내야▼

일본경제 침체가 우려되는 것은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아직 아시아의 ‘대표주’다. 일본의 불안이 다른 아시아 국가로 확산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수출 증대를 위해 엔환율 약세를 방치하고 있다고도 한다. 일본 금융기관들의 대출금 회수도 우려된다. 한국 금융기관들이 일본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은 약 40억달러로 장기자금이 많다고는 하나 일본의 은행회계가 시가평가제로 바뀌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경제 위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원론적이기는 하나 기업부실로부터 금융을 격리시켜야 하며 기업 금융 구조조정을 하루 빨리 마무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대증요법으로 문제를 덮어버리면 문제는 더욱 커져 반드시 불거지게 마련이다.

이우광(삼성경제연구소 일본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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