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여수/문화재 파괴 남의 일 아니다

  • 입력 2001년 3월 7일 18시 38분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집권 세력인 탈레반 정권이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이슬람 교리를 들먹이며 불교 유적 파괴를 선언하고 나서 세계를 경악시키고 있다. 이에 대해 불교권에 속하는 국가는 물론이거니와 이슬람권을 포함한 모든 국제사회가 심각한 우려와 함께 이에 대한 방지대책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긴급 메시지를 유엔 사무총장에게 전달하면서 유엔의 신속한 조치를 요청한 바 있다.

세계 인류 문화유산의 보호책임을 지고 있는 유네스코는 탈레반 정권의 바미안 마애석불을 포함한 불교 유물의 파괴 지시가 내려진 이후 이를 막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탈레반정권 불상파괴 야만행위▼

최근 유네스코 특사로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한 피에르 라프랑스(전 파키스탄 주재 프랑스 대사)는 이미 가즈니, 헤라트, 잘랄라바드 등 일부 소도시에 있던 불상들이 다량 파괴되었다고 보고했다. 라프랑스 특사는 높이 53m와 35m의 바미안 석불은 물론이고 현재 남아 있는 불교 유적에 대해 더 이상의 파괴가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재차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해 국제사회의 심각한 우려의 목소리를 강력히 전달할 예정이다.

또한 유네스코는 이번에 파괴된 유적을 복원함과 동시에 장기적인 안정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의 문화유산 보호에 관한 국제적인 캠페인을 전개하고 이에 필요한 재원과 기술지원을 국제사회에 호소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이번 탈레반 정권의 반문명적인 조치는 우리에게 언제라도 종교라는 이름 아래 인류의 문명이 파괴될 수 있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일깨워 주고 있다. 과거 십자군 전쟁을 통해 수많은 인명이 살상되고 재산도 파괴되었으며, 지금도 종교의 다툼으로 인해서 지구상의 많은 곳에서 살상과 약탈 등 폭력적인 행위가 정당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아프가니스탄의 불교 유적지에 대한 대규모 파괴 행위는 종교라는 이름 아래 폭력이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고 있다. 유엔과 유네스코가 1999년 채택한 ‘평화의 문화와 비폭력을 위한 선언 2000’은 광신과 비방, 그리고 타인에 대한 거부보다는 대화와 경청을 항상 선호함으로써 표현의 자유와 문화적 다양성을 옹호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인류의 귀중한 유산이 지진이나 폭풍 같은 자연재해에 의해서보다는 인간의 개발 욕구와 부주의, 그리고 편견에 의해서 주로 파괴되고 있다는 많은 전문가들의 주장이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최근 국제기념물 및 유적위원회(ICOMOS)가 발간된 ‘위기의 인류유산’이라는 보고서는 유산 파괴의 주범이 자연이 아닌 인간임을 재확인해 준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 보스니아의 유적지들에서 볼 수 있듯이 경제개발 이외에도 정치와 군사적 갈등에 의해 수 천년 동안 보존되어 왔던 귀중한 여러 유적들이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한 사례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종교-경제논리로 훼손 말아야▼

불행하게도 우리의 기록도 그렇게 깨끗하지만은 않다. 구태의연한 전통 척결이라는 미명 하에 장승 등 문화재를 획일적으로 처리하던 과거의 행태는 접어두더라도 아직도 무속인이나 신도들에 의한 석불 훼손행위가 자행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주경마장 건설 및 해인사 인근 골프장 건설 움직임 등 경제논리의 미명 하에 행해지는 반문화적 발상도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탈레반의 반문화적 행위는 그 어떠한 변명과 주장을 하더라도 정당성을 갖기 어렵다. 더더욱 지금은 숭배의 대상물로 기능하지도 않는 불상을 교리의 잣대로 획일화하는 자세는 매우 위험천만한 사고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탈레반 정권의 인식과 종교적 광신성은 어느 사회, 어느 지역에서도 발견될 수 있는 보편적 잠재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싫든 좋든 우리의 역사와 삶 속에 용해된 여러 문화를 함께 아우를 수 있는 이해와 관용, 그리고 가치의 존중이 시급히 요구되는 때다.

김여수(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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