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왼쪽 가슴 아래께 온 통증'

  • 입력 2001년 3월 2일 18시 50분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장석남 시집, 창작과비평사 펴냄

시인 장석남(36)의 시는 봄날 얼음 녹은 강가에 외롭게 떠있는 빈 배 같다. 그 풍경은 아련하다. 아름답고 슬프며, 따스하면서 몽환적이고, 때로는 허무하다는 말이다.

‘번짐,/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산기슭의 오두막 한 채 번져서 /봄 나비 한 마리 날아온다’(‘수묵정원9―번짐’ 중)

아련한 추억을 배경으로, 삶과 죽음의 거리가 소멸되어 있고 떠남과 돌아옴이 한몸으로 섞여 있다.

‘배를 한껏 세게 밀어내듯이 슬픔도 /그렇게 밀어내는 것이지 //배가 나가고 남은 빈 물 위의 흉터 /잠시 머물다 가라앉고 //그런데 오, 내 안으로 들어오는 배여 /아무 소리 없이 밀려들어오는 배여’(‘배를 밀며’ 중)

배가 떠나가고 남은 빈 물 위의 흉터를 사랑의 흉터로 비유하는 장석남의 세련됨. 여유와 평화, 잔잔한 달관과 초월….

‘마당 밖으로 나가는 징검다리 / 끝에 /몇 포기 저녁별 /연필깍는 소리처럼 /떠서’와 같은 표현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의 시는 전체적으로 비관적이다. 비관이 자주 반복되면 자칫 상투적일 수 있다. 떨림이나 긴장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장석남 시의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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