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아이에겐 이런 책을]거인들이 사는 나라

  • 입력 2001년 2월 23일 18시 41분


◇ 거인들이 사는 나라

“엄마, 난/만화가 싫은데/텔레비전도 싫은데/걔네들이 자꾸 그러는데/날 좋아한대./매일 같이 있고 싶대.”(본문34쪽)

그 아이는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한다. 앞에 있는 쓰레기통을 뒤집어 엎기도 하고, 옆에 있는 아이를 괜히 툭툭 건드리기도 하고, 너무 귀찮게 굴어서 상대도 해 주지 않으려 내빼면 기어이 뒤좇아 와서는 참새처럼 조잘댄다.

“난 정말이지/공부가 무지무지 좋은데/친구가 되고 싶은데/글쎄, 그 녀석이/날 싫어한대./꼴도 보기 싫대./어떡하지….” “어느 날 갑자기/엄마가 날 모르는 척하면 어쩌지?/너 같은 말썽꾸러긴 내 아들이 아니라고/대문 밖으로 내쫓으면 어쩌지?”

그 아이의 걱정거리는 참 유별나게 심각하다. 참 가당찮아서 머리를 꽁 쥐어박으려다 보면 그 아이는 얼른 또 다른 말을 조잘거려서 손을 멈칫하게 만든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가끔/빨간 불이 켜져 있는데 길을 건너고 싶어./…/갑자기 나보다 덩치가 큰 뚱보한테/괜히 싸움을 걸고 싶고 가끔/아무런 까닭 없이 찔끔 눈물이 나.” “얘, 우리 내일부턴 절대로/엄마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학원에 가지는 말자./그 대신, 운동장에서 만나/코피 터지도록 싸움이나 한판 하자!”

이건 또 무슨 소리람? 갑자기 가슴이 서늘해진다. 그래, 넌 참 많이 힘들고 아프기도 하구나. 그래서 그렇게 끊임없이 내게 장난을 걸고 속시원하게 마음껏 조잘거리고 싶었구나. 오죽 답답하면 널 쉴새없이 간섭하는 어른들을 “단 하루만이라도 거인국으로 보내자”고 외쳤을까!

“겨드랑이가 뜯어지건 말건/옷도 우당탕퉁탕 벗어 던져야/시원하지, 시원하지.”

그래 그래, 나도 너만큼 어린 아이였을 적엔 바로 지금의 너와 똑같았단다. 내가 그걸 그만 까맣게 잊고 있었구나.

책을 펼치면 동시들 속에서 무슨 이야기든 자꾸 조잘거리고 싶은 아이들이 막 뛰쳐나온다. 짧은 동시 속에 동화보다 더 풍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이야기는 아이들의 생생한 생활 속에서 건져낸 것이어서 값지다. 어른들이 먼저 읽고 아이들에게 기꺼이 건네줄 만한 책이다.(아침햇살아동문학회)

achs003@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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