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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2월 22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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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질 위한 경제 펼쳐야▼
통계에 빠졌거나 감춰진 실업자들을 고려하면 실질 실업자는 300만명이 넘는다는 보고도 나왔다. 동시에 계약직이나 파트타이머 등 비정규직 노동자 수도 급증하여 55% 이상이라고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2000년 2·4분기에는 정리해고 중심의 구조조정이 일단락되면서 실업자가 80만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일각에서는 이제 고실업 문제도 해결의 가닥이 잡혀가는 것이 아니냐는 낙관론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대우자동차 사태 등으로 2월부터 다시 100만명 수준을 돌파한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어 결코 안심할 일이 아니다.
여기서 곰곰 생각해보면 ‘경쟁력이 있어야 생존이 가능하다’는 것을 근본 원리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실업이 늘 존재할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자본의 입장에서는 노동력의 유연한 투입을 위해, 그리고 취업자의 노동통제를 쉽게 하기 위해서라도 실업자들이 늘 많으면 좋다. 게다가 경기 순환 과정은 호황과 불황을 거치면서 과잉된 부분들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오늘날 유행어가 된 ‘구조조정’이라는 말도 사실은 자본이 생존을 위해 그 과잉 부분을 조절하는 과정이 아니던가. 결국 이런 사실들은 실업정책들이 실업률 수치를 세련되게 관리하는 정책이나 단기적 임기응변으로는 결코 효과를 거둘 수 없음을 시사한다.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최근의 실업사태나 노동시장 상황을 좀 더 차분히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이 발견된다. 첫째, 중년실업 문제다. 예전 같으면 한창 일할 나이인 30, 40대가 구조조정 과정에서 ‘탈락’해 실업자가 되는 경우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일반적 경향대로 자신의 정체성을 일이나 일자리 속에서 찾았기 때문에 실직 이후 심각한 정체성 위기에 빠진다. 특히 성과주의, 능력주의 인사제도가 강화되면서 3분의 1 정도의 우수인력은 정규직으로 남되, 3분의 2 정도는 탈락해 실업자가 되거나 비정규직으로 재취업하게 된다. 둘째, 여성실업 문제다. 전반적으로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은데도 노동시장에서 여성은 2차, 3차로 밀린다. 반면 정리해고 과정에서는 1차로 대상자에 오른다. 셋째, 청년실업 문제다. 해마다 20만명 정도의 대학생들이 졸업하지만 정식 취업을 하는 경우는 20%에 불과하다. 갈수록 취업경쟁은 격화되고 일자리는 줄어드니 이들을 ‘상실세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넷째, 비정규직 문제다. 1200만명의 노동자 중 700만명 이상이 비정규직인데 이들은 정규직의 절반 정도의 임금을 받는다. 비정규직의 60% 이상은 여성이다. 이들은 고용주의 뜻에 따라 수시로 취업과 실업을 반복해야 한다. 다섯째, 박사실업 문제다. 해마다 국내외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사람은 약 8000명인데 교원이나 연구원이 되지 못하는 사람은 3000명 이상이다. 해마다 실업자가 3000명씩 쌓인다는 말이다. 취업하더라도 박봉에 신분 불안까지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고급인력 낭비 또는 해외 유출 등 논란이 일고 있다.
▼노동시간 줄여 일자리 나누자▼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지금까지 실효성이 의심되는 정책들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래서 가장 먼저 경제 운용 원리를 경쟁과 이윤으로부터 연대와 삶의 질로 이동시켜야 한다. 그래야 시장에 맡길 분야와 민주적 정책이나 풀뿌리의 판단에 맡길 분야들이 정해질 것이고, 일과 사람의 결합이 효과적으로 이뤄진다.
다음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전략이 필요하다. 모두가 적게 일하되 남녀노소 차별 없이 고르게 일해야 하는 것이다. 끝으로 필요한 것은 소위 ‘제3섹터’ 등 새로운 일자리의 적극적 발굴과 사회적 인정, 그리고 새 일자리로 가는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등이 될 것이다.
강수돌(고려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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