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무늬만 웨스턴 무비<7인의 새벽>

  • 입력 2001년 1월 31일 11시 21분


<7인의 새벽>의 주인공들은 세상에 대한 오기로 똘똘 뭉쳐있다. 문제 많은 삶을 살면서도 "세상은 누구 것도 아니다.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라고 큰소리 뻥뻥 친다. 영화 속 그들이 몇 번이나 '반복학습'시켜주는 그 말은 비오는 주말 오후에 들리는 지루한 빗소리 마냥 헐겁게 귀에 감긴다. 이거 '땅 따먹기'같은 영화구나, 누가 세상을 차지하는지 그 답을 알면 영화가 보이고 세상이 보이겠구나. 관객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하지만 세상은, 영화라는 매체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7인의 새벽>은 한 마디로 마카로니 웨스턴 무비를 '표방한' 영화다. 그렇다고 <7인의 새벽>이 마카로니 웨스턴 무비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그냥 표방만 그렇게 했다. 할리우드 고전 서부극을 비틀어 '재기 발랄함'으로 승부수를 띄웠던 이탈리아식 웨스턴 무비. 이것의 흔적은 <7인의 새벽>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황량한 사막에 세워진, 흔히 갱들의 근거지로 활용됐던 주점(酒店)이 편의점으로 바뀌었고 서부영웅과 보안관의 숨막히는 대결이 돈에 눈먼 7인의 무법천지로 바뀌었다는 점만 약간 다를 뿐이다.

이 영화는 제목에서부터 이미 어떤 서부 영화를 참고했는지를 공고히 한다. <7인의 새벽>은 루이스 길버트의 <새벽의 7인>이나 존 스터지스의 <황야의 7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같은 영화들의 '머리 굴리지 않은' 변형판이다. 영화 속 갱들의 무법천지가 되는 호텔 이름은 프레드 진네만 감독의 <하이 눈> 제목을 그대로 따와 '하이 눈 호텔'이라고 지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 훌륭한 참고서들을 펼쳐 놓고도 '일단 멈춤' 자세로 일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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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단순하다. 거액의 돈 가방을 두고 7명의 무법자들이 벌이는 '돈 따먹기' 전쟁 이야기. 이들 중 가장 먼저 돈 가방을 손에 넣은 인물은 스페어 택시 운전기사 기훈(정소영)이다. 그의 차에 치어 즉사한 남자 손에 들려 있던 돈 가방은 사건의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가 된다.

편의점 여직원 현희(이지현)는 안에 뭐가 들어있는 지도 모른 채 이 위험한 가방의 보관자가 되고, 돈 냄새를 맡은 형사 콤비 길수(이남희)와 재성(안홍진), 다리 절단 전문 청부업자 파이프强(성동일), 라이트光(윤용현), 돈 가방의 실제 주인 왕 회장(명계남), 회장의 정부, 그녀의 또 다른 정부가 돈 가방을 놓고 덤비면서 돈 가방이 보관된 편의점은 완벽한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게다가 여기에 10대 양아치들이 가세하면서 영화의 라스트는 그야말로 '편의점 습격 사건'을 방불케 한다.

얼핏보면 <7인의 새벽>은 최근 개봉된 <자카르타>와 비슷한 형식 및 내용을 취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는 완전히 다른 구조, 다른 내용의 영화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플롯 구성 방식. 한 지점을 터닝 포인트로 잡고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갔던 <자카르타>와 달리 이 영화는 플래시백과 포워드 기법을 활용해 사건의 고리를 맞춰간다.

이건 아주 머리 아픈 게임이다.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의 가이 리치 감독이나 <펄프 픽션>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아니라면 도저히 엄두 내지 못했을 만한 시도를 <7인의 새벽>의 김주만 감독도 용감하게 했다. 하지만 시도 자체만 가상할 따름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조감독, <삼양동 점육점>의 시나리오 작가로 일했던 김주만 감독은 캐릭터를 살리는 데 실패했고 이야기를 맛있게 조리하는 데 역량 부족을 드러냈다.

이는 <노랑머리>로 한껏 재미를 봤던 제작사 'Y2시네마'의 잘못된 '밀어붙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제작사는 보도자료 한켠에 자신들을 "섹스 없는 영화는 만들지 않았던 영화사"라고 소개했는데, 그 당당함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 헤아리기 어렵다. 싼값에 큰돈을 벌어준 <노랑머리>의 성공이 이들에게 이상한 교훈을 남긴 것일까. 제작사의 주장처럼 <7인의 새벽>은 '액션과 섹스'를 모두 등장시킨 상업주의 영화지만 상업적이 되기엔 아무래도 한 끗 모자라 보인다.

황희연<동아닷컴 기자>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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