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총재가 자민련을 국회교섭단체로 인정한 것은 국회를 정상화하기 위한 현실적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제발 싸움질은 그만두고 경제부터 살려라”라는 것이 민심인 만큼 이 총재의 선택은 불가피하다고 하겠다.
그렇다고 정치사상 유례가 없는 ‘의원 꿔주기’마저 어물어물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이는 분명히 민주주의의 정도(正道)에 어긋나는 것으로 원상 복귀가 원칙이다. 이 문제는 야당이 요구하기 전에 여권이 먼저 풀어야 할 사안이다. 적어도 국민에게 정중하게 사과하는 자세라도 보일 때 정치에 대한 국민 불신이 다소나마 누그러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강한 여당’을 내세우고 있는 여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여전히 강성으로 치닫는 것 같아 걱정이다. 민주당이 ‘안기부 돈 선거자금 유입’ 사건과 관련해 다시 “이회창 총재가 몰랐을 리 없다”며 공세를 취하면서 정치권에 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미 본란에서 여러 차례 지적했듯이 ‘안기부 돈 사건’은 그 진상이 명백히 밝혀져야 한다. 그 결과에 따라 한나라당 이 총재가 책임질 것이 있으면 책임지고 사과할 것이 있으면 사과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문제는 처음부터 여권이 검찰에 앞서 ‘정치공세’로 몰아가면서 사건의 성격이 정치적으로 변질돼 왔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과거 여권의 잘못된 관행이나 비리의 짐을 털어내는 결단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 총재가 풀어야 할 문제이고 그 결과에 대한 옳고 그른 판단은 결국 국민이 할 것이다. 하물며 여권이 아직 수사중인 사건을 두고 ‘몰랐을 리 없다’는 식으로 야당 총재를 다시 공격하는 것은 정국을 경색시킬 뿐이다.
여권이 한편으로는 상생을 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총공세’를 외쳐서야 상생정치가 이뤄질 수 없다. 그래서는 ‘너희는 깨끗하냐’는 진흙탕 싸움만 계속될 뿐이다. 이제 ‘힘의 정치’보다는 민생을 위한 정치를 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