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인터뷰]'-JSA' 북한병사 신하균 "나를 키운 건 세 명의 남자"

  • 입력 2001년 1월 15일 18시 50분


한국 영화계의 새로운 기대주로 꼽히는 신하균(27)은 젊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고답적인 취향을 갖고 있다. 좋아하는 배우가 왕년의 스타 제임스 딘이고 즐겨 피는 담배는 도라지다.

영화계 선배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혼자서 조립식 프라모델을 맞추고 노는 게 가장 큰 낙이다. 말수가 적고 수줍음이 많지만 국내 유일의 조립식 프라모델 생산업체인 '아카데미 과학’의 정회원이라며 최근 열리고 있는 프라모델 전시회 얘기에 열을 올린다.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착하고 귀여운 북한병사 정우진역으로 단번에 스타로 떠오른 그는 그 휴유증으로 심한 몸살을 앓았다. 주연도 아니었지만 영화개봉후 80여차례에 이르는 인터뷰 공세에 녹다운된 것.

“한겨울 추위속에 ‘JSA’를 찍느라고 고생했다고 생각했는데, 어휴, 영화를 끝내고 나서가 더 힘들더라구요.”

그가 스타가 된 뒤 변화를 가장 많이 느낀 것은 영화제 시상식에서다.

재작년 청룡영화제 때의 일이다. 시상식에 초청을 받고 시상식장 앞까지 왔다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양탄자를 밟고 입장하는 영화감독들과 다른 배우들의 모습에 주눅이 들었다. 그래서 한참 문앞을 서성이다 식이 시작할 때쯤 초청장을 입장권으로 바꾸려고 정문 진입을 시도했으나 ‘공짜 관객’으로 오해한 경호원에게 뒷 덜미를 잡혀 끌려나온 기억이 있다.

올해는 이 때문에 아예 시상식 한참 전에 입장하긴 했지만 그는 이미 영화제마다 남우조연상과 신인상을 휩쓸고 있어서 경호원들에게도 낯익은 얼굴이 되어버렸다.

그를 스타로 만들어준 정우진역이 시쳇말로 요즘 잘 나가는 터프가이형도 아니고 멜로의 주인공도 아닌데 왜 인기를 누리는 것일까. 당연히 자신도 잘 모른다. 그저 그가 무명시절 영화촬영 중에도 여자 스탭들이 유독 그에게 뜨거운 차를 대접하기 위해 줄을 섰다는 것 밖엔.

그의 영화 인생에는 세 명의 남자가 숨어있다.

첫 번째는 그를 영화계에 입문하도록 만든 제임스 딘이다. 중학교때 분식집 같은 곳에서 흔히 마주치는 제임스 딘의 사진을 보면서 반했다. 나중에 그가 영화배우라는 말을 듣고 그가 출연한 4편의 영화 비디오를 직접 사서 보면서 영화배우의 꿈을 키웠다.

“애처로와 보이기도 하는 그 눈빛…. 동경의 대상이었죠. 남자 대 남자의 사랑이라고 할까요. 아이, 이런 말 하면 괜히 오해사는데…. 그래도 다른 말이 없네요. 사랑이에요.”

두 번째는 장진 감독이다. 장 감독은 그가 다음 출연작으로 선택한 ‘킬러들의 수다’의 감독이기도 하다. 서울예대 마당극 동아리 ‘만남의 시도’ 93학번 대표였던 신하균은 군입대를 앞두고 89학번 대표로 이제 막 군에서 제대한 장 감독을 처음 만나 연극 한편을 같이 했다.

“장 감독을 통해 연극 연기가 이렇게도 재미있을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어요. 군대에 가있는 동안에도 휴가만 나오면 장 감독을 만났죠. 도라지 담배맛을 배운 것도 장 감독에게서였구요.”

둘의 만남은 운명이었던지 신하균이 대학 졸업후 들어간 극단의 첫 작품 연출자가 장 감독으로 결정됐다. 그 작품이 ‘택시 드리벌’. 그는 이후 장 감독의 분신처럼 그가 연출한 모든 작품에 출연해왔다. ‘기막힌 사내들’에서 번번이 실패하면서 자살을 기도하는 남자와 ‘간첩 리철진’에서 박진희의 싸움꾼 동생이 바로 그였다.

세 번째는 ‘JSA’에서 북한군 병사로 호흡을 맞춘 송강호다. 북한군 연기를 위해 촬영기간 내내 붙어다니면서 그로부터 연기가 얼마나 경이로울 수 있는가를 배웠기 때문이다.

“송선배는 하나의 대사를 두고 수십가지의 표정과 목소리를 끊임없이 준비합니다. 그리고 그 수십가지 중에서 촬영현장 분위기와 감정에 딱 맞는 하나를 자유자재로 끄집어내는거에요. 그때마다 ‘아니, 이 자가’하며 깜짝 놀라는 표정을 감추기 위해 제가 얼마나 힘이 들었는데요.”

그가 꿈꾸는 연기자는 한마디로 공격적인 연기자다.

“딱히 어떤 배역이나 장르를 도전하겠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익숙한 배역에 안주하는 방어적 연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영화든 연극이든 TV든 저 자신을 속이지 않는 연기를 할 수 있는 공간과 배역만 주어진다면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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