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보의 옛날 신문읽기]사랑해요, 앙드레김!

  • 입력 2001년 1월 9일 11시 19분


요즘 디자이너 앙드레김은 말 그대로 전성기입니다. 이 한국 최고의 디자이너는 수십년 동안 변함없이 늘 1위였지요.

TV에서는 늘 그를 모시려고 안달입니다. 전문모델은 물론 연예인들은 그가 디자인한 옷을 한번 입어보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맞아요. 언제나 그랬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신세대들까지 앙드레김이라는 디자이너를 사랑한다는 점입니다.

인터넷에는 그의 어린 팬이 만든 홈페이지까지 등장했습니다. 앙드레김은 한동안 유행하던 삼행시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지요.

신세대 스타도 아닌 이 할아버지의 매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아마 노익장이 아름답기 때문일 겁니다. 1935년생이라니 벌써 60대 중반 아닙니까.

60대 중반의 나이에 그처럼 현역으로, 현장에서 땀흘리는 사람이 어디 흔한가요.

그리고 뭐랄까, 그에게는 뭐라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천진성같은게 있지요. 그에게는 나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순진무구함이 있습니다.

제 경우, 저는 사실 그의 프로정신보다 그의 천진성을 더 사랑합니다.

오늘은 이 할아버지의 청년시절을 한번 보여드릴 참입니다.

67년 6월13일자 대한일보 기삽니다. <우리는 즐거운 콤비>라는 연재물의 여섯번 째 기사로군요.

제목은 <꾸며주고 빛내주고.... 함께 3년> <정적인 아름다움으로 환상적 작품에 빛 더해>로군요.

<어릴 때부터 그림과 의상 스케치를 즐겨했던 앙드레김은 여성의 의상을 보는 눈은 여성 자신들보다 남성편이 뛰어나리라 생각하고 용감하게 투신한 최초의 남성 디자이너.

62연도에 살롱을 갖고 그동안 10여회의 패션쇼와 구미각국에서의 의상발표, 수십회의 TV 콜렉션 등을 가진 32세의 미혼청년이다. 우아하며 환상적인 자기의 작품을 입어낼 수 있는 모델 역시 우아하며 환상적인 분위기여야 한다는 주장..... >

앙드레김의 콤비로 등장한 모델은 65년도 미스 코리어 진 김은지양(23)입니다. 김양은 직업모델을 쓰지 않는 앙드레김의 단골모델로서 3년째 즐거운 컴비로 지내고 있다고 하네요.

기사를 더 읽어보실까요.

<.... 모델의 키가 반드시 커야 한다는 사실에 반대하는 앙드레김은 개성과 품위를 더 내세운다.

따라서 정적인 아름다움을 풍기는 김은지양이 그의 작품 모델로서 적당하다고.

지금까지 7회 출연으로 앙드레김의 패션쇼를 빛내준 김은지양은 모델로서 까다로운 요구가 없는 자연스러운 전시효과를 칭찬한다.

김은지양과 함께 미니스커트를 절대 반대하는 앙드레김씨는 여성의 우아함이 말살되는 정도가 지나친 노출은 서슴없이 흉본다.

김은지양은 그가 입었던 의상 중에서 로이얼 블루와 에메럴드 그린의 68마리 공작이 수놓인 이브닝 코트가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대구산의 이 미인은 숙대 재학 중 마이애미 비치 세계 미인대회에 참가했었다. 앙드레김은 서라벌예대 미술과와 국제복장학원의 졸업생, 앞으로도 계속 알뜰한 컴비로서 일할 계획이라고. >

그러고보니 앙드레김의 작품 가운데, 오늘날까지도 미니는 단 한번도 없었던 것 같군요. 앙드김은 청년시절부터 오늘날까지 초지일관으로 `우아'와 `환상'을 고집해왔던 것입니다.

이제 65년 5월30일자 기사를 보여드리지요. 어떤 신문인지는 알 수가 없군요. 당시의 유명 모델들은 다 소개되고 듯한 기삽니다.

< 앙드레김의 여름을 위한 의상 발표회가 28일,29일 살롱 앙드레에서 열렸다.

오금순 신정현 리시앙 이윤자 전계현 모니카유 등의 모델이 입고 나온 44점의 의상은 요즈음 많이 나는 프린트 무늬의 실크를 사용해서 주름을 잡은 얌전한 외출복, 호화로운 분위기를 살린 레이스의 홈드레스와 칵테일 드레스 등이었다. 이중 3부에 나온 푸른모시의 아리랑 드레스와 저고리를 벗으면 이브닝 드레스로 입을 수 있는 누런 베로 만든 아리랑 드레스가 특히 인기를 모았다. >

하하, 금순 윤자 등의 `촌스런' 이름이 모니카 리시앙 앙드레김 등의 `세련된' 이름과 한데 섞여있으니 재밌네요.

저는 신문이나 잡지, TV에 앙드레 김이 나오면 꼭 읽거나 보는 편입니다.

최근에 읽은 기사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작년 신동아 11월호에 나온 `정신과 여의사 정혜신의 남성 탐구-김종필과 앙드레김'이었습니다. 그 칼럼은 앙드레김에 관한 몇가지 희화화된 시선과 오해를 불식시키는데 아주 좋은 자료지요.

그 칼럼의 한 부분을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 필자는 앙드레김에 대한 관련 자료들을 보면서 그가 섬뜩할 만큼 치열한 장인정신으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고집하고 있는 예술가 중의 하나라고 믿게 되었다. 그는 또 실생활에서 믿기지 않을 만큼 진지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를 보면서 웃음을 터뜨리거나 실없이 희화화(戱畵化)하는 일에 대단한 흥미를 보인다.

이런 현상은 단지 그의 독특한 스타일이나 말투만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인간 앙드레김의 내면세계를 정교하게 살펴보는 작업이 선행된 다음에야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문제일 것이다. >

중언부언 인용하지 않을테니 꼭 한번 읽어보세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앙드레김과 김봉남이라는 어색한 간극 때문에 가끔 웃었습니다. 청문회 때도 그 이름 때문에 웃었지요. 마침내 커밍아웃의 주인공 탤런트 홍석천의 `앙드레김이에요 / 드자이너예요 / 레이름은 / 김봉남이예요 '라는 그 삼행시 때문에 뒤집어졌습니다.

하지만 이제 디자이너 앙드레김의 진정성, 진지함, 장인정신, 예술가 기질을 다시 한번 보아주세요. 그러면 빛나는 예술가과 땀흘리는 장인의 얼굴이 떠오를 것입니다. 아름다운 얼굴이지요.

사랑해요, 앙드레김!

늘보 <문화평론가>letitb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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