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는 말한다]SF 소설 '듄' 번역한 김승욱씨

입력 2002-03-08 17:58수정 2009-09-18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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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는 말한다/SF 소설 ‘듄’ 연대기 번역한 김승욱씨

“힘겹게 번역한 원고를 읽으면서 ‘이제 내가 완성한 작품’이라는 생각에 뿌듯해져요. 영어 의미는 알겠는데 우리말로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 어느 순간 ‘신의 계시’처럼 멋진 문장이 떠오를 때의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지요.”

외국 서적을 우리말로 옮기는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인 김승욱씨(36·사진)가 1년6개월째 영미 문학계의 SF 고전으로 불리는 ‘듄(Dune)’ 번역 작업에 빠져 있다. ‘듄’은 기자 편집자 대학강사 뉴스해설가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쳐 SF 작가로 변신한 프랭크 허버드(1920∼1986)가 65년부터 20년 동안 6부작으로 쓴 대작이다.

일간지 문화부 기자로 있다가 미국으로 유학, 1995년 뉴욕시립대에서 여성학 석사학위를 받은 김씨는 유학 당시 공상과학 TV 시리즈 ‘스타트렉’ 시리즈를 수차례 반복해서 시청했을 정도로 ‘SF’와 ‘판타지’ 열혈 팬. 그가 우주시대 3만년의 인류 역사를 담은 ‘듄’을 선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멋모르고 달려들긴 했는데 재미와 부담을 동시에 느끼고 있어요. 20여년에 걸쳐 쓴 소설이고 수만년을 넘나드는 배경을 갖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죠. ‘듄’ 번역에 매달리느라 그 좋아하는 여행도 못가고 있습니다.”

그는 원작의 맛을 우리말로 살리기 위해 단어 하나를 쓰는데도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아랍 문명에 대한 동경’이 은연 중에 깔려있는 소설이어서 아랍어로 된 이름 지명 동물의 말뜻을 찾느라 인터넷에서 자료를 뒤지고 아랍 전문가로부터 발음 자문을 받으며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그는 1960년대 중반에 쓰여지기 시작한 ‘듄’이 이미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의식을 갖고 있었음을 높이 평가했다. 유전자 교배를 통해 원하는 인간형을 만드는 등 과학이 앞으로 어떻게 진보하고 문제가 될지를 예견했기 때문이다.

“주인공 레토가 모래 송어(튜브처럼 생긴 짐승)를 받아들여 피부처럼 만드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모래 송어는 모래 벌레로 진화하고 레토는 황제로 군림합니다. 결국 미래에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생명체로 ‘진화’하는 선택을 내리죠.”

‘듄’은 현재 황금가지에서 9편까지 나왔고 올 가을까지 총 18∼20권으로 마무리될 예정. 앞으로 출간될 책의 내용은 사막 행성이 녹음이 무성해졌다가 다시 사막으로 변하고 옛날 생활방식 속에 새로운 우주 문명이 등장하는 등 복잡해진다.

그는 ‘듄’ 외에도 ‘나이트 폴’ ‘세계의 지성 28인의 편지’ ‘모리의 마지막 수업’ 등을 번역했다. 하지만 한때는 기업체의 번역 일로 푼돈을 벌며 고생하기도 했다.

“번역 지망생들이 외국어 못지않게 우리말 공부를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보여지는’ 같은 잘못된 수동태를 남발하고 ‘틀리다’와 ‘다르다’를 구분 못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사전 지식을 겸비해서 주를 달아줄 정도의 수준이 돼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말이 ‘성장’할 수 있거든요.”

혹시나 그의 마음 속에 언론인, 여성학자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진 않을까? 기자 생활하면서 ‘앎’에 대한 갈증이 컸고, 여성학을 공부한 것은 학문이 아닌 고정관념을 깨는 연습이었다는 김씨. 그는 “두 가지 모두 번역 일에 도움이 됐다”면서도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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