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와 놀아나다]2% 부족할 때, 정우성의 목마른 사랑

  • 입력 2000년 12월 29일 17시 54분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이별하는 순간. 남자는 절규하고 여자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떠난다. 이 광고는 마치 15초의 압축드라마 같다. 길이는 짧지만 여운은 오래도록 남는다.

벌거벗은 나무가 그득한 겨울의 숲. 광고의 시작은 정우성이 갑자기 마주 선 여인에게 소리치는 것부터다.

"너 만나고부터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주먹까지 쥐고선 한 대 때릴 것처럼 공격적인 자세다. 그는 다시 소리친다. "가!"

급기야 낙엽을 긁어모아 여인에게 던진다. 그러나 낙엽세례를 받은 그녀는 숲의 나무인양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다. 긴 생머리, 깨끗한 눈빛을 지닌 이 여인은 바로 장쯔이. <와호장룡>과 <집으로 가는 길>의 히로인이고 중국의 떠오르는 차세대 스타다.

그러나 정우성은 그녀의 조용한 모습이 더욱 참을 수 없다는 듯 울부짖는다. "가, 가! 가란 말이야아아" 눈물범벅의 절규가 서서히 잦아들고 정우성의 담담한 독백이 이어진다. '내 나이 스무 살에 이 여자를 만났다'

뒤이어 정물화처럼 조용히 있던 장쯔이가 나지막하게 입을 연다. '나를 채워 줘' 마지막으로 이 한마디를 남기고 뒤돌아서는 여인. 자신이 이별을 선언하고도 쉽사리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남자. 이별의 아련한 모습 위에 깔리는 카피.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 2% 부족할 때'

캬아. 무엇보다 카피가 절묘하다. 상품명의 느낌이 한결 애틋하고 극적이다. 그 동안은 날 물로 보지마, 라고 흘겨보던 효리와 최진실을 내세워 물리적인 목마름을 해소하는 컨셉트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몸에서 마음으로 이동했다.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완벽주의자가 되는 걸까, 2% 부족한 것도 견딜 수 없다.

불멸의 테마인 사랑의 갈증. 극단적인 모습으로 헤어지는 연인의 모습이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가라고 윽박지르는 남자의 눈엔 눈물이 흐르고 여자는 남자의 눈물어린 절규에 대해 원망도 미움도 아닌, 오히려 애절한 눈빛으로 자신을 채워달라고 말한다.

혹시 연인은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사랑하고 있는건 아닐까. 정우성의 그 울부짖는 이별선언은 마치 과격한 형태의 사랑고백처럼 들린다. 무슨 이유인진 몰라도 이별을 선택해야 하지만,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고 남자는 급기야 소리치게 된 것이다.

나를 채워 줘, 장쯔이가 남긴 이 말 역시 이별을 받아들인다는 것일까 다시 기다리겠다는 의미일까.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 광고는 시리즈로 내보낼 예정이다. 이별 얘기부터 시작해 거꾸로 과거를 역추적하는 구성이다.

곧 개봉할 영화 <무사>에서 정우성과 장쯔이는 고려무사와 명황실의 왕녀로 등장해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 광고가 더욱 애절하고 생생한 느낌으로 감정이 묻어나는 건 영화에서라도 이미 사랑에 빠져봤기 때문일까?

아무리 들이부어도 밑 빠진 독처럼 채워지지 않는 사랑의 목마름. 하지만 이별마저 사랑의 종착역이 될 수 없는, 이 연인들의 마음을 적셔 줄 감로수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만 같다.

김이진 AJIVA77@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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