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교수의 법과 영화사이]한 사람의 힘

  • 입력 2000년 12월 19일 11시 17분


▼<한 사람의 힘>(John Avildsen감독, 92년)▼

“하늘은 이름 없는 풀을 만들지 아니 하고, 대지는 욕망이 없는 인간을 내놓지 아니한다.”

한 사람의 자각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자신의 생전에 이루지 못하면 장래를 위한 초석을 놓을 수는 있다. 이른바 ‘인권운동’이란 그런 것이다.

영화 ‘파워 오브 원’(power of one), 즉 ‘한 사람의 힘’은 문자 그대로 한 사람의 지식 청년의 각성을 그린 작품이다. 이제는 역사의 유물이 된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드에 도전한 한 선구자의 삶을 조명한 영화이다. 수세기에 걸쳐 남아프리카에서 벌어진 복잡한 인종갈등의 역사를 몰라도 진한 감동을 얻을 수 있는, ‘인권의 달’에 적합한 작품이다.

장엄한 석양빛이 초원의 신사, 기린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어린 소년의 나레이션이 시작된다. 영국인 아버지의 유복자로 태어난 P. K.는 어머니마저 죽자 일곱 살 나이에 기숙학교로 보내진다. 독일계선교사가 경영하는 이 학교의 유일한 영국학생인 그는 동급생의 린치에 시달린다. 불안과 절망의 삶에서 그를 지켜준 것은 줄루족 보모에게서 배운 신비로운 자연의 영적 힘이다. 콩고에서 돌아온 할아버지의 주선으로 원예학 교수의 시동이 되면서 그에게 새 인생이 열린다. 자연은 모두 서로 협조한다.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자연 속에 담겨 있다. 그리고 한 사람 인생의 승패는 건강과 교육, 두 가지 조건에 달려있다.

그의 강론은 자연과 인간세계를 결합한 철학이다. 작은 몸집의 오줌싸개 소년에게 교수는 수용소에 감금된 흑인 챔피언에 의뢰하여 권투를 가르친다. “머리를 쓰면 골리앗을 꺾을 수 있다. 처음에는 머리로, 그리고는 가슴으로.” 언젠가는 부족간의 갈등과 흑백의 인종차별이 사라질 날이 올 것을 확신하는 흑인노인은 “헛된 희망이라도 절망보다는 낫다”를 좌우명으로 삼는다.

P.K.는 음악회를 통해 수용소의 여러 부족을 통합하는 유례 없는 성공을 거두고 그들의 ‘레인메이커’로 떠오른다. 인간성이 메말라 붙은 절망의 땅에 서우(瑞雨)를 불러올 전설적인 메시아의 현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염원이 그에게 사명을 부여한 것이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P.K.에게 새로운 무대가 열린다. 흑백간의 시합이 금지된 법을 위반하여 권투 경기를 열어 인종통합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야학을 열어 문맹퇴치운동에 나선다. 철저한 인종분리와 차별정책의 신봉자인 보어인 교수의 딸과 사랑에 빠져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을 재현한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으로 더욱 승화된 ‘사랑’과 ‘사상’의 결합을 이룬다. 어렵사리 얻은 옥스퍼드대학의 장학금을 포기하고 현장 운동가로 변신하는 것으로 영화는 종결된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흐른 1993년, 인종통합을 이룩한 두 사람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지도자, 만델라와 데 클레르크에게 노벨평화상이 주어졌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주어진 상도 그 분 혼자의 몫이 아닐 것이다.

(서울대 법대 교수) ahnkw@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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