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이만우/노조 물리력 행사 안된다

  • 입력 2000년 12월 18일 19시 04분


낙하산 인사에 항의해 은행장 취임을 물리적으로 막았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백수십억원의 격려금을 지급했다는 한심한 공기업의 불법적 노사관행에 대한 감사원의 지적을 대다수 국민은 벌써 엊그제 일로 기억하고 있다.

▼구조조정은 읍참마속 필요▼

‘국민은행 노조는 12일 저녁부터 은행장실을 봉쇄하고 김상훈 행장을 압박, 14일 새벽 주택은행과의 합병 논의를 일단 중단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는 보도를 접했을 때 대한민국은 과연 법치주의국가인가를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행태가 ‘민주적 노사관계 정립’을 외쳐온 그간의 정부정책의 산물인가 하는 탄식조의 물음을 되뇌지 않을 수 없다.

민주적 노사관계란 노동자와 사용자가 대등한 입장에서, 그리고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앞서 지적한 국민은행의 경우는 민주적 노사관계와는 거리가 멀다.

환란의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잠재력을 복원하기 위해 마련된 4대 부문의 구조조정은 신물이 날 정도로 말만 무성했지 목표치에 크게 미달하거나 시행과정의 오류 등으로 인해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기보다는 경제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해 경제전체가 장기간 침체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노조의 물리력 행사로 구조조정이 번번이 지연된다면 우리 경제의 안정적 성장에로의 복원은 기대할 수 없다.

세계적 네트워크를 갖춘 초대형 선진은행들에 맞서 국내시장을 지키려면 초대형 우량 선도은행은 필수적이다. 은행 숫자가 적정선을 넘어선 이른바 ‘오버 뱅킹(over banking)’이 경쟁력의 발목을 잡고 있는 원인중의 하나임은 불을 보듯 명백한 일이 아닌가.

어렵게 꼬여 있는 노사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세계화시대의 무한경쟁에서 살아 남으려면 기업과 금융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노사관계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현 체제의 노조도 살리고 친(親)노동정권의 이미지도 살리면서 구조조정을 완수하는 윈윈전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읍참마속(泣斬馬謖)으로 법과 원칙을 지키는 정면돌파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1970년 후반 느닷없이 밀어닥친 외환위기와 경제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영국의 대처 정부는 온갖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강성노조와 정면 대결하여 노조를 순치시켰다. 영국노조는 ‘대처리즘’을 수용하고 대결적 노사관계를 협력관계로 전환했다. 그들은 영국병을 치유하고 경제를 살리는데 성공했다. 미국의 레이건 정부도 불법파업에 참여한 항공관제사를 모조리 해고시킴으로써 노동규율을 지켰다. 껍데기를 깨는 아픔을 통해서 무한 경쟁시대의 협력적 노사관계를 정립해야 할 의무를 정부는 엄격히 준수해야 한다. 그리고 노조는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의 지혜로 일시적인 불편과 어려움을 의연하게 견뎌내야 한다.

금융구조조정이나 기업구조조정도 특정 시한을 정해놓고 조급하게 서둘러서는 그 효과가 반감됨을 명심해야 한다. 어디까지나 은행의 자율적 판단과 결단으로 시장흐름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자금경색과 신용경색이란 당면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투신사를 비롯한 제2금융권의 구조조정이 무엇보다 시급한 실정이다. 1999년 7월 대우사태 이후 투신사는 시장에서 신뢰를 잃게 됨으로써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에서 기관투자가로서의 역할을 상실하게 되었고 기업의 자금조달이 막히는 자금경색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시장흐름따른 금융개혁을▼

회생 불가능한 투신사는 과감히 정리하고 회생 가능한 투신사는 한은특융을 동원해서라도 지원함으로써 자본 경색을 해소해야 한다. 은행권에서는 수신고의 지속적 증가에도 불구하고 일정에 쫓기는 무리한 구조조정에 따른 불확실성 증대와 지나치게 획일적인 자기자본 비율의 적용은 신용경색의 원인이 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구조조정을 뒷받침할 고용창출과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한 범경제부처의 각고의 노력 또한 협력적 노사관계를 정립하는데 커다란 보탬이 될 것이다. 개혁의 아픔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국민만이 그 값진 대가도 향유할 수 있음을 노 사 정은 물론 국민 모두가 명심해야 할 시점이다.

이만우(고려대 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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