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신간]굴곡의 삶, 그 차가운 회상의 기록

  • 입력 2000년 12월 15일 19시 43분


“지옥에 떨어졌다고 해도 정확히 그걸 써내는 작가.” 일본 작가 하야시 마리코는 유미리를 가리켜 그렇게 평했다.

새로 번역 출간된 에세이집 ‘생명’은 유미리가 운명에 온몸으로 부딪친 선혈의 기록이자, 다큐멘터리를 방불하는 차갑고도 정밀한 회상기다.

지난해, 그는 한 유부남의 아이를 가졌지만 아기 아빠는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중절수술을 고려하던 그에게, 한때의 동거남이자 친한 친구인 연극 연출가 히가시 유타카의 암 발견 소식이 들려왔다.

“유타카를 꼭 살리고 싶었다. 한 생명의 종말을 막고자 한다면 또 다른 생명의 시작을 박탈할 수 있겠는가? 나는 뱃속의 아기와 암에 걸린 히가시라는 두 존재가 생명이라는 유대로 이어져있는 것 같은 기이한 생각에 휩싸였다. 그리고 생명의 탄생과 재생을 위해 모든 힘을 바쳐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임신과 간병이라는 두 가지 투쟁이 이어졌고, 새 생명은 남았지만 히가시는 갈 길을 갔다.

“릴레이의 바톤 터치처럼 극적인 시간을, 애절한 사랑과 소원을 담아 유미리는 바로 그 정면에서 써냈다.”

▽생명/유미리 지음/김유곤 옮김/320쪽 7000원/문학사상사▽

(세토우치 세키쵸오, 일본 작가)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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