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권순활/위기론이 위기 부채질

  • 입력 2000년 12월 13일 18시 39분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연구부장을 맡고 있는 정문건 상무는 10월까지만 해도 내년 우리 경제를 대체로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9대 1로 비관적인 견해로 돌아섰다.

실물경제 분야에 밝은 그가 입장을 바꾼 것은 대내외적 악재도 있지만 최근 몇 개월 간 우리 경제에 대한 위기론이 실제 이상으로 커지면서 소비위축 등 경제의 악순환이 시작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상무는 “외환보유액이나 국제수지 등 거시경제지표를 보면 ‘제2의 IMF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은 극히 낮은 데 국민심리와 주가는 마치 새로운 외환위기가 시작된 듯한 느낌”이라고 우려했다.

민간 경제전문가나 경제부처 공무원들을 만나보면 우리 사회에 적지 않게 퍼져있는 ‘경제위기론’의 후유증을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진념(陳稔)재정경제부장관은 “경제를 움직이는 결정적인 요인은 사람의 마음과 행동”이라며 “적당한 위기의식을 갖는 것은 좋지만 너무 ‘위기, 위기’ 하다 보면 진짜 위기가 올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기획예산처 K국장은 “우리 경제가 지금 어려운 것은 분명하지만 불안을 부추기는 것은 현실의 왜곡 및 과장일 뿐”이라며 “도대체 국민 누구에게 도움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일부 언론의 경제보도에 대한 문제점도 자주 지적된다. 한 재경부 국장은 “경제불안을 한껏 부추기거나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곧 망할 것처럼 주장한 신문이 바로 다음에 ‘실업대란 걱정된다’는 식으로 ‘이중잣대’를 사용하는 것은 너무하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제전문가나 언론이 IMF를 예견하지 못했다는 자괴감 때문에 ‘면피용’으로 앞장서 위기설을 확산시킨다는 뼈아픈 지적도 나온다.

우리 경제는 당분간 ‘겨울’을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대통령이 2차 세계대전중이던 1941년 5월에 한 연설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것은 두려움 그 자체다.”

권순활<경제부>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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