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of the week]복고 스타일리스트 레니 크래비츠

  • 입력 2000년 11월 27일 17시 55분


◇ 모든 장르의 완벽한 수혜자

비틀스(The Beatles), 블러(Blur), 메가데스(Megadeth), 텍사스(Texas) 등, 최근 국내 팝 음악계에서 주목할 만한 베스트 앨범들이 연이어 발매되고 있다. 그 가운데 또 하나 눈길을 끄는 이름, 레니 크래비츠(Lenny Kravitz)에게 혹하게 된다. 그 동안의 앨범에서 보여준 화려한 모습과 달리 깔끔한 화이트 셔츠를 입고 정면을 응시하는 그의 사진도 그렇거니와 'American Woman'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그를 베스트 앨범으로나마 접하게 되는 일은 반갑다.

사실상 레니 크래비츠는 10여 년간의 음악 활동을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팝 음악계에서 그 만큼의 주목을 받아오지 못했다. 그가 [Greatest Hits]라는 이름 아래 베스트 앨범을 발표한다고 했을 때도 시큰둥한 반응도 많았다. 그 이유는 그가 아직 음악적 도달점에 이르지 못한 상태라는 것.

그가 'Fly Away', 'It Ain't Over Til It's Over', 'Are You Gonna Go My Way', 'American Woman'과 같은 매력적이면서 출중한 곡들을 만들어내고, 98년과 99년, 두 차례나 '최우수 남성 록 보컬 부문'도 수상했다는 것은 중요시 되지 않는 듯하다. 단지 그가 독자적인 음악 색깔을 찾지 못했다는 이유가 부각될 뿐이다.

그러나 그가 음악적으로 천부적 재능을 타고 났다는 데 이견을 제시한 할 사람은 극히 드물다. 동시대의 뮤지션들 사이에서 그의 음악은 결코 식상한 것은 아니다. 그는 복고적인 스타일을 지향하면서도 펑크(Funk), 록, 블루스, 재즈, 얼터너티브 록, 소울, 힙합, 테크노 등 현존하는 거의 모든 장르를 음악적 소재로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 낸다.

문제는 동시대가 아닌 앞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갔을 때다. 이번 베스트 앨범의 서두를 장식하는 'Are You Gonna Go My Way'부터 어딘가 낯익은 인상을 주지 않는가? 마치 60년대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를 듣는 듯한 느낌이다. 또한 'Rock And Roll Is Dead'의 기타 리프는 70년대 초반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을 연상 시킨다. 그리고 'It Ain't Over 'Til It's Over'는 70년대 커티스 메이필드(Curtis Mayfield)로 거슬러 올라간 것같다.

레니 크래비츠는 선배 뮤지션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사운드를 현대적으로 재창조해 내는 데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지만 이는 마치 전대의 가장 훌륭한 요소를 추출해 그것을 믹스해 놓은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 때문에 혹자는 그를 가리켜 60년대 히피족에서 파생된 '네오히피(neohippie)'라고 비웃기도 한다. 또한 90년대를 위해 60년대 스타일을 도용하는 시대착오적인 뮤지션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선대로부터의 영향권에 머물지 않는 이가 과연 있겠는가. 단지 레니 크래비츠는 그 영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로부터 성공을 거뒀기에 도마 위에 올랐을 뿐이다. 실제 그의 음악은 우리가 충분히 즐길 만한 것이다. 그의 두 번째 앨범 [Are You Gonna Go My Way?]는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의 [Unplugged]를 물리치고 영국 차트 정상에 올랐으며, 빌보드 차트에서도 호응을 얻었다.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익숙한 사운드, 그리고 그것을 적절히 믹스해 내는 레니 크래비츠의 음악은 매력적이다. 온갖 장르를 혼합해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레니 크래비츠는 프린스(Prince)와 데이빗 보위(David Bowie)를 닮았으며, 블루지한 록큰롤 사운드는 지미 헨드릭스를 닮았다. 또한 멀게는 존 레논(John Lennon),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에 이르기까지 이미 존재하는 모든 음악은 그의 음악적 자산이 된다.

그를 결코 폄하할 수 없는 것은 그가 그 음악적 자산을 충분히 소화해 낼 만한 재능을 지니고 있다는 점. 독학으로 기타, 베이스, 드럼, 피아노 등의 악기를 마스터한 만능 인스트루멘탈리스트이기도 한 그는 이를 바탕으로 프로듀싱에도 탁월한 면모를 보여준다. 그는 이미 마돈나(Madonna)의 'Justify My Love'와 앤지 스톤(Angie Stone)의 [Black Diamond]에서 그 역량을 발휘했다. 또한 원맨 밴드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많은 악기를 마스터했다는 것은 사운드 메이킹에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된다. 그의 곡들을 들어보면 복고적이면서도 깔끔하게 마무리된 악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레니 크래비츠의 음악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탁월한 리듬 감각이다. 이는 그의 음악 전체를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는 화려한 애드립이 가능한 기타리스트로도 알려졌지만, 익스트림(Extreme)의 누노 베튼코트(Nuno Bettencourt)처럼 예리한 리듬 커팅에 더욱 일가견이 있다. 거기에 펑키(Funky)하고 블루지한 분위기가 더해져 막강한 그루브한 사운드가 만들어진다. 이는 단지 기타에 한정된 것만은 아니다. 그의 최대 히트작 'It Ain't Over 'Till It's Over'에서 들을 수 있는 스트링의 리듬 커팅 역시 쉽게 들을 수 없는 것이다.

이번 베스트 앨범에 부정적인 시선을 던지는 이들에게 레니 크래비츠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앨범은 정말 조급하게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몇 가지 점에서 이 앨범은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기도 하다.

이 앨범에는 내 삶에서 나와 함께 한 지난 10 년간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6,70년대의 복고적인 사운드를 총망라해 놓은 듯한 이 베스트 앨범은 어찌 보면 그의 음악 생활 10 년만이 아니라 3,40년의 음악 역사를 담아낸 듯한 착각도 든다. 베스트 앨범에 수록된 소울풀한 신곡 'Again' 역시 복고적인 향취는 여전하다.

그러나 이전에 발표한 그 어느 곡보다도 사랑스럽고 상냥하게 느껴지는 이 곡은 절묘한 리듬감을 지닌 곡들에 비하면 어딘지 창백해 보인다. 힙합 비트에 댄서블한 사운드가 주를 이뤄 록큰롤을 원하는 이들에게 아쉬움을 안겨줬던 [5]때문일까.

그가 전세대의 자산을 차용함으로써 비난을 받아 왔더라도 그로부터 6,70년대 록큰롤의 향취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었다. 레니 크래비츠처럼 고전적인 록의 깊이에 집착하며, 그것을 생기 있고 역동적인 사운드로 들려주는 이도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차기작에서도 그가 록큰롤의 수혜자로 남아 있기를 바라게 된다.

조은미 jamogue@tubemusic.com

기사제공 : 튜브뮤직 www.tubemus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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