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일기]한번 악처는 영원한 악처

  • 입력 2002년 1월 3일 16시 35분


옆집 친구랑 수다를 떨고 있는데 갑자기 그 집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춥지요? 제가 도시락밥을 너무 많이 담았나요? 많이 드시고 힘내시라고요, 호호호.”

저건 분명 사귄 지 얼마 안된 연인들의 목소리지 몇 년을 살 비비고 살아온 부부의 대화가 아니었다. 어휴, 닭살. 어찌 남편이 그리 좋을 수가 있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하루 한 번씩 전화해주지, 휴일에 가족 데리고 외식나가주지, 돈 벌어다주지 정말 고맙잖아.”

우리 남편도 그 정도는 하는데…. 내가 너무 소홀했나 싶어 한 번 애교를 떨어봐야지 생각했다.

‘딩동∼.’

남편의 귀가를 알리는 벨소리가 들렸다. ‘쫑쫑쫑’ 뛰어가 시원한 물 한잔을 건네며 콧소리를 냈다.

“자기야, 수고했네. 어서 온나. 오호호홍∼.”

이상한 콧소리를 내자 남편의 얼굴에서 한 자락 위기감이 스쳤다. 그러나 이미 시작된 쇼. 이제 와서 막을 내릴 수는 없지. 정성스레 끓인 된장찌개로 식사를 가뿐히 마치고 남편을 눕게 했다. ‘탁탁탁탁∼’ 상쾌한 안마 소리와 “아야야∼” 남편의 비명이 엇갈렸다. 여기저기 근육이 뭉쳤던 모양이지. 이렇게 힘들었으면 말했어야지. 이 곰탱이. 내친김에 칭찬을 연발했다.

“자기야, 우리 먹여 살리느라 힘들지? 고마워. 항상 고마워하면서도 말을 못했어. 우리 애들이 자기 닮아서 인물이 훤하다고 얼마나 칭찬이 자자한 줄 알아? 나는 또 얼마나 행복하게. 남편 잘 생겼지, 돈 잘 벌어다주지. 복 받았지. 오호호홍∼.”

매일 안마해주겠노라는 맹세를 하려고 애정 어린 눈빛을 던지는데 남편이 발딱 일어나 정색을 한다.

“너, 무슨 사고 쳤지? 바른 대로 말해! 무슨 일이야?”

아니라고 손사래를 쳐봐도 소용 없었다. 죽었다 깨도 이런 마누라가 아니었는데 왜 돌변했느냐는 채근만 이어졌다.

“지금 말하면 다 용서해 준다.”

아! 이래서 한 번 악처는 영원한 악처가 되어야 하는 법인가 보다.

박경수31·주부·대구 남구 이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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