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經 濟(경제)

  • 입력 2000년 11월 21일 18시 34분


經 濟(경제)

19세기에 들어와 서양의 文物이 물밀듯이 들어오면서 이른바 西勢東漸(서세동점)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客觀的(객관적)이고 科學的(과학적)인 그들의 文物은 확실히 主觀的(주관적)이고 理智的(이지적)인 東洋(특히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그만큼 우리로 봐서는 異質的(이질적)이었던 셈이다.

이렇게 전혀 異質的인 두 文化가 교류할 때에는 물처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文化의 一般的인 屬性에도 불구하고 마치 서로 다른 혈액을 輸血(수혈)받는 것처럼 反撥(반발)과 衝突(충돌)을 수반하는 것이 常例다. 근대 중국에서 있었던 격렬한 文化論爭이나 우리나라 大院君의 鎖國政策(쇄국정책)이 좋은 예다.

이처럼 異質的인 文化의 교류에는 또 한가지 어려운 점이 남는다. 워낙 體質이 다르기 때문에 제대로 描寫(묘사)할 방법이 간단치 않은 것이다. 이른바 飜譯(번역)의 문제다. 역사상 도무지 같은 말이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이 援用(원용)과 創新(창신)이다. 즉 비슷하거나 최소한 한 가닥 유사점이라도 지닌 말이 있을 경우 그것이 수 백 년, 아니면 수천 년 전의 것일지라도 찾아 내 두루뭉실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조차 불가능할 경우에는 아예 새로 말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 점에 能했던 자들이 일본 사람들이었다. 동양 삼국 중 제일 먼저 서양문물에 접했기 때문에 飜譯의 책임을 고스란히 뒤집어 써야 했다. 다행히도 援用과 創新에 능했던 민족이라 예의 그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 결과 현재 사용하는 많은 學術用語들이 그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져 우리는 물론, 한자의 宗主國인 中國에서조차 사용하게 되었다. 이 점은 그들의 貢獻(공헌)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援用의 경우 牽强附會(견강부회)도 없지 않았고 또 해당 단어의 본 뜻을 상실했다는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 버린’ 격이다. 그들이 援用한 經濟(economy)라는 말은 본디 중국에서는 ‘政治’를 뜻하는 말이었다. 예로부터 중국에서 諸葛亮(제갈량)을 ‘최고의 經濟家’로 꼽았던 이유다. 대신 食貨(식화)나 理財(이재)가 현재 經濟의 의미였다. 그것을 아는 자가 얼마나 있겠는가. 油價는 치솟고 株價는 곤두박질을 거듭하고 있다. 요즘 어려운 經濟상황을 맞아 한 번 생각해 보았다.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478sw@email.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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