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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1월 21일 16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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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엔화가치는 달러당 109엔대 후반으로 밀려있으며, 유로존의 유로화 가치도 유로당 85센트대로 다시 하강세다. 심각한 것은 대만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들의 로컬통화가치가 추락하며 지난 1997년과 같은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증시를 필두로한 세계증시의 동반추락과 각국 통화가치의 급변동은 이러한 상황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과거 세계경기의 회복은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주도한 측면이 강하다.
반면 작년의 세계경기 회복은 기업들의 설비투자보다는 주가상승에 따른 자산소득 증가 덕을 많이 입은 게 사실이다. 소득증가에 따라 민간소비가 늘어나는 이른바 '부의 효과(wealth effect)'에 기인한 것이다.
이 마당에 나스닥지수는 또다시 지수 3000이 붕괴되며 연중 최저치로 내려앉았다. 다우지수도 지수 1만을 장담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이런 상황에서 개도국들은 금융정책에서 더욱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개도국들은 자국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거나 통화가치를 절상시켜야 하나 현실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칫 섣불리 금리를 인상했다가는 디플레를 초래할 수 있다.
자국통화를 평가절상하기는 더욱 어려운 노릇이다.국제수지의 악화와 외화유출이라는 최악의 비용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 간 금리차이가 국제금융시장에서 현안이 되고 있다.
금리로 표시되는 돈가치를 따져볼 때 미국과 일본 간 돈가치는 상대가 안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일 현재 미국의 대표 금리인 10년물 정부채권의 수익률은 5.67%로 일본의 10년불 정부채권 수익률의 1.695%와 무려 4% 포인트에 가까운 금리차를 보이고 있다.
양국의 자산수익률을 감안할 때 엔화 표시자산에 대한 투자메리트는 거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로 인해 일본내 자금이 미국시장으로 이탈, 엔화 약세가 지속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주가의 추가하락도 불보듯 뻔한 노릇이다.
실제로 지난 20일 뉴욕외환시장에서는 엔화 가치가 달러당 110엔대로 추락하는 등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것은 두가지 원인 탓이다. 하나는 세계 곳곳에서 정치불안 상황이 지속되고 있고, 다른 하나는 조지 부시가 43대 미국 대통령으로 확정되면 '강한 달러' 정책을 고수, 일시적으로 달러화 강세기조가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 그것이다.
역사적으로도 미국은 어려운 시기에 '강한 달러'를 고집했다. 프라자 합의가 그랬으며, 건국 이후 최장기 호황을 누리고 있는 지금의 경기팽창도 '강한 달러'에 근본을 두고 있다.
특히 부시는 경기 연착륙과 물가안정을 위한 '강한 달러'를 고수할 명분을 충분히 축적해 놓은 입장이다.
미국의 강한 달러 정책은 국제자본을 미국시장으로 빨아들이는 '블랙홀'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준다. 일본 유럽 등 선진국은 물론 개도국의 자금이 모두 달러로 환전돼 미국시장으로만 유입되면 국제금융시장에 심각한 왜곡현상을 야기할 수 있다. 이는 곧 세계경제의 후퇴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같은 현상이 실제로 지금 국제금융시장에 벌어지고 있다.
최근 일본 유럽 동남아 등지에서 달러를 매수한 세력은 주식을 사지않는다. 달러매수 세력이 사는 것은 미국의 정부채다. 올초 6.2∼6.5%대의 유통수익률에서 움직이던 미국의 10년부 정부채권이 5.7%로 하락한 것은 이 채권을 사려는 투자자들이 급증한 때문이다. 수익률과 반대로 움직이는 채권가격이 크게 떨어진 것은 당연하다.
현재로서는 달러가치의 하락을 위해서는 통화정책 당국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연 6.5%의 연방기금(FF) 금리를 인하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다른 방법으로는 세계 각국이 미국경제에 대한 의존도와 기대감을 낮추거나 일본과 유럽, 동남아 각국이 급속히 경기를 회복하는 것이다.
후자보다는 전자의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더 높아 보이지만 이 역시 쉬운 문제가 아니다.미국의 증권사들도 주식투자 비중을 낮추고 채권투자 비중을 앞다퉈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유럽 동남아 각국의 경기회복 역시 말 처럼 쉽지는 않다.
미국이 자국의 경제안정만을 위해 '지나치게 강한 달러'를 고집하면서 주가거품 제거에 나서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과거의 경험이 그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지난 1929년 세계경제를 주무르던 미국과 영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금리를 올리고 무역장벽을 높임에 따라 세계경제가 공황에 빠져든 것이 좋은 사례다.
방형국<동아닷컴 기자>bigjo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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