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아트 오브 워', 비밀조직 맞선 특수요원의 활극

  • 입력 2000년 11월 20일 18시 58분


‘아트 오브 워’(The Art of War)는 영화적 퓨전현상의 한 정점을 보여주는 듯하다. 장르상으론 볼거리 풍부한 액션과 만만치 않은 두뇌게임의 첩보가 겹쳐있고 스타일상으론 암울한 누아르적 분위기에 불쑥 악동같은 코미디가 얼굴을 내밀기도 한다. 제목 자체가 ‘손자병법’을 뜻할 만큼 내용 역시 동양적 색채가 짙게 배어있다.

쇼(웨슬리 스나입스)는 유엔 비밀 첩보조직의 특수요원. 이 조직은 철저히 베일에 쌓여있지만 유엔의 막후조정에 필요한 정보를 캐내는 일 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실력행사까지 불사한다. 북한 미사일기술에 대한 정보를 빼내고 남북한 협상 테이블에 앉도록 북한 국방장관(인민무력부장)을 협박(?)하는가 하면 미국과 중국의 무역협상 체결에도 깊숙히 개입힌다. 하지만 온갖 첨단기술과 정보망으로 무장한 이 조직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배후세력의 음모에 무력하게 무너진다. 유엔본부에서 열린 회의석상에서 유엔주재 중국대사가 암살되고 암살범을 추격하던 쇼가 오히려 현행범으로 몰려 체포된다. 믿었던 동료들은 살해되거나 실종되고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쇼는 실타래처럼 얽힌 국제정치의 음모를 홀로 파헤쳐나간다.

뉴욕을 무대로 조직의 엄창난 음모에 맞서는 개인의 고독한 대결을 그렸다는 점에서는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암호명 콘돌’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 하지만 초고층건물에서 펼치는 고공액션이나 근거리에서 권총대결을 펼치면서 총알을 피해가는 하이테크 액션은 ‘매트릭스’만큼 현란하다. 특히 물안개 뿜어내는 빗줄기속에서 고층건물과 뒷골목을 무대로 펼쳐지는 추격장면은 긴장감과 역동미를 두루 갖춘 명장면.

용감무쌍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이 영화에 그럴 듯한 현실감을 불어넣어 주는 장치는 두 개다. 하나는 남북한 문제나 중국과 미국의 무역협정 체결, 티벳 독립 문제 등 국제정치 현안을 과감하게 용해시킨 것. 다른 하나는 화면을 미스터리성 강한 누아르 톤으로 이끌고 간 점이다. 영화속에서 우울한 빗줄기와 깨진 유리 파편에 투영되는 뉴욕은 ‘세븐’의 무대였던 시카고 못지않게 불가사의한 도시로 바뀐다.

하지만 이런 스타일상의 승리는 후반부의 상투적 결말로 아쉬움을 남긴다. 그토록 교활하던 악당들이 마지막엔 갑자기 순진해지고 결말의 반전 역시 너무 뻔하다. 동양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으로 머문 점도 씁쓸하다. 제목으로 쓰인 손자병법이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한구절로만 싱겁게 등장하고 마는가 하면 차이나타운을 환락의 공간으로 묘사하는 오리엔탈리즘적 시각도 여전하다. 18세이상. 25일 개봉.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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