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목판화 애니메이션 아마 세계서 처음일걸요"

  • 입력 2000년 11월 19일 18시 12분


목판화로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을까.

점토, 모래, 필름 긁기 등 다양한 소재와 기법의 실험적 애니메이션이 많지만 목판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 이 엉뚱한 상상력에 도전한 대학생들이 드디어 목판 애니메이션 작품을 냈다.

서울 남산에 있는 애니메이션센터에서 30일부터 12월4일까지 졸업작품 전시회를 갖는 계원예술조형대 애니메이션과 한창훈(26) 김도현(26) 오길원씨(20)가 그 주인공.

‘가시나무새’라는 제목의 2분58초짜리 작품을 위해 그들이 깎은 목판은 200여장. 촬영 단계에서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애써 깎아놓고도 써먹지 못한 것까지 합치면 300여장을 족히 깎았다. 제작비도 다른 팀들에 비해 3∼4배가 넘는 150만원 정도가 들었다.

스스로 ‘목노협(목판노가다협의회)’으로 팀 이름을 붙였을 정도로 목판을 깎기 위해 ‘막일’를 해야 했다. 목판을 주로 깎은 한창훈씨는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처음엔 목이 아프다가 상반신 전체가 뻐근해졌고 나중엔 조각칼을 쥔 오른손 마디 마디가 퉁퉁 부어 숟가락을 들기 힘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7월부터 10월까지 넉달을 꼬박 목판을 깎았고 촬영에는 한달이 걸렸다. 배경음악 작곡과 조명도 세사람의 힘으로 했다.

다 깎은 목판을 촬영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이들은 교수들의 도움을 받아 목판을 조금씩 겹쳐 장면마다 연결되도록 하는 쇼트 디졸브(Short Dissolve) 기법을 썼다.

한씨는 “주위에선 농담조로 ‘세계 애니메이션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라고 말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가 원래 기획했던 대로 작품이 나오지 않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가시나무새’는 가시나무새의 울음소리를 동경하는 한마리 새가 이 소리를 찾기 위해 먼길을 떠난다는 내용. 목판이 주는 부드러운 질감과 음영이 새로운 효과를 나타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다른 목판 작품에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들은 “웬만하면 삼가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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