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남성 작가가 그린 신선한 순정만화,<취중진담>

  • 입력 2000년 11월 17일 18시 23분


여성 작가들이 판치는 순정만화계에 눈에 띄는 신인 남성 작가의 작품이 나왔다. 지난 해 서울문화사 신인공모전에서 <전국노래자랑>이란 작품으로 데뷔한 송채영씨(27)의 <취중진담>(잡지 나인, 서울문화사)이 그것.

<취중진담>은 연인 사이에 술이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지 담담한 필체로 그린 멜로만화. 술기운을 빌려 사랑을 고백한다는 그룹 <전람회>의 '취중진담'이라는 노래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이 만화는 옴니버스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각 작품은 16쪽이라는 짧은 지면 속에서 마무리된다. 지난 9월부터 1, 2회인 '노르웨이의 검은 황소'와 '술잔 세주는 남자'로 연재를 시작한 <취중진담>은 현재 3회 'Waiting For'까지 나왔다.

이 작품의 스토리는 단순하지만 감정적 비약이 없어 오히려 잔잔한 감동을 준다. <취중진담>에서 '술'은 처음 만난 남녀 사이의 서먹함을 없애주는 고마운 매개체. 애정을 느끼면서도 서로 바라보기만 하던 사람들이 술 덕분에 사랑하게 되고, 마신 술잔의 숫자를 헤아려주고 취하면 뒷일까지 챙겨주던 여성과 사랑하게 되는 남자 이야기는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일들이어서 공감이 간다.

사랑한다는 고백을 아끼는 등장인물들의 대사도 여운이 남고 포장마차의 주인 아주머니의 질퍽한 사투리와 취객들의 주사 등도 사실적인 느낌을 준다.

이런 억지 부리지 않는 이야기는 '칸'과 '화면'을 짜임새 있게 운영하는 구성력 덕분에 잘 살아난다. 특히 클로즈업을 자제한 채 한 페이지를 몇 개의 칸으로 나눔으로써 영화의 롱테이크 느낌을 주도록 한 것은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상황을 묘사하려는 작가의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에 다양한 각도로 연출한 칸의 미장센이 보태지면서 자칫 밋밋해질수 있는 화면은 생기를 띈다.

작가 송채성씨는 "순정만화계에서 보기 드문 남성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기보다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싶다"고 말했다. 순정만화는 화려하고 여성스러워야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린다면 <취중진담>의 투박하고도 담백한 그림체가 그리 낯설지만은 않을 것 같다.

오현주<동아닷컴 기자>vividr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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