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득헌의 스포츠세상]경쟁 없으면 관중도 없다

  • 입력 2000년 11월 13일 18시 45분


히말라야에 눈과 귀가 쏠린 한해였다. 산악인 엄홍길씨와 박영석씨 때문이다. ‘작은 탱크’ 엄홍길씨는 7월 K2봉(8611m) 등정에 성공함으로써 히말라야 8000m 이상의 고봉 14개를 모두 등정했다. 역사상 8번째이고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이었다. ‘히말라야의 철인’ 박영석씨는 10월 시샤팡마봉(8027m)에 오름으로써 히말라야 고봉 등정기록을 13개로 늘렸다.

산과 등산에 익숙지 않아서이기도 하겠지만 내게 히말라야 얘기는 늘 새롭다. 신비하고 두렵기도 한 존재. 언젠가는 바라볼 수 있는 곳에라도 가봐야지 하는 설렘을 주는 산. 그렇지만 얘기 주제가 산은 아니다. 나의 눈과 마음이 이전보다 훨씬 더 히말라야에 쏠리게 된 이유를 보고 싶은 것이다. 엄홍길씨와 박영석씨의 경쟁 덕분이 아니었을까. 솔직히 나는 두 사람이 먼저 14봉 완등을 이루겠다는 ‘선의의 경쟁’을 했다고 믿는다. 물론 두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진 않을 터이지만.

골프 소식도 봄 여름 가을을 가리지 않고 이어졌다. ‘천재’에서 ‘황제’로 호칭이 달라진 타이거 우즈의 시즌 10승 및 시즌 상금 1000만달러 돌파 여부 등은 놓칠 수 없는 관심사였다. 그렇지만 나는 우리 골퍼들의 성적에 더 연연했다. 왜 그랬을까. 김미현과 박세리 때문이라고 여긴다. 우즈는 울트라 슈퍼스타로서 독주를 거듭했음에 비해 김미현과 박세리는 경쟁자로서 ‘보이지 않는 싸움’을 했을 것으로 믿는 까닭이다. 두 사람 역시 ‘라이벌 의식’ 같은 것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는 하지만.

스포츠는 슈퍼스타를 보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정상급 선수나 팀간의 분간하기 힘든 경쟁을 보는 게 더 짜릿하다 할 것이다. 잭 니클로스는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골퍼지만 그가 아널드 파머나 게리 플레이어와 아슬아슬한 대결을 벌이는 장면이 우즈의 독주를 지켜보는 것보다 흥미진진하다는 말이다.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라는 프로야구의 올해 모습은 어느 쪽인가. 한국시리즈가 7차전까지 이뤄져 겉으로 보기엔 괜찮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렇지는 않다고 여긴다. 관중이 250만여명에 그쳤다. 95년 540만여명과는 비교가 되지 않고 지난해에 비해서도 22%나 적었다. 더구나 한국시리즈에서는 시리즈 최소관중 기록도 나왔다. 이유야 간단하다. 슈퍼스타를 보는 재미도, 신나는 경쟁을 보는 재미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프로스포츠의 속성을 모르지는 않지만 ‘부자(富者)팀 독주’의 산물이 아닐까.

경쟁이 있는 현장. 그래서 관중과 함께 하는 스포츠. 단순한 원리가 배제되는 듯해 안타깝다.

<논설위원·체육학박사>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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