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역사 날조의 손

  • 입력 2000년 11월 6일 19시 29분


‘역사가 인간을 현명하게 만든다’고 말한 건 프랜시스 베이컨이었다. 아니, 거꾸로 우매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일본의 후지무라 신이치라는 고고학자가 구석기 유물을 ‘심은 뒤’에 다시 발굴한 소동이 바로 그렇다. 실적에 쫓겨 그렇게라도 한 건 해보려 했다는 실토, ‘마(魔)가 끼었다’는 자백에 섬뜩할 따름이다. 마치 11년전 역시 일본 언론의 한 기자가 특종을 만들기 위해 오키나와 바다밑의 산호초를 훼손한 일을 떠올리게 한다. 기자가 낙서를 새기고는 어리석은 다이버의 짓인 양 보도했다가 들통났던 것이다.

▷고고학자도 그렇게 살아가나?역사 이전의 시대를 유유자적 걸어다닐 것 같은 직업인이 실적에 쫓기고 날조라도 해야 했다니. 더 심각한 우려는 그의 행적과 ‘업적’ 때문이다. 일본사의 굵직한 구석기유물이 이 학자의 손을 거쳐 출토되었다. 가는 곳마다, 파는 곳마다 구석기 역사를 경신, ‘신(神)의 손’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동료들은 ‘그가 늘 남이 안보는데서 혼자 파내왔다’ ‘그가 캐낸 수십㎞ 떨어진 곳의 유물이 아귀가 딱 맞아떨어지는 기적도 있었다’고 말한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이다. 오시마 다다모리(大島理森)문부상도 후지무라의 날조가 어디까지 미쳤는지, 그가 말한 두곳(가미타카모리, 소신후도자카)이외의 지역에서 발굴했다는 유물에 대해서도 정밀조사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문부상은 교과서 수정도 시사했다. 일본 우익의 대표적인 역사서인 ‘국민의 역사’는 바로 가미타카모리에서 나온 유물을 근거로 일본의 ‘독자적인 문명론’과 우월성을 펴고 있다. 교과서 왜곡 움직임에도 영향을 미칠 것만은 분명하다.

▷역사(history)의 어원은 그리스어 라틴어의 ‘연구’이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과거에 대한 분석이며 탐구여야 한다. 구석기 유물을 날조해 일본의 유구함을 꾸미는 행위, 전쟁과 침략의 근대사를 지워서 가르치려는 역사왜곡, 그것은 비슷한 심리의 궤적 아닐까. 호박에 줄을 그어 수박이라고 우기는 애교와는 다르다. 역사의 날조 왜곡은 범죄다.

<김충식논설위원>seesch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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