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신성철/기초 다져야 노벨과학상 보인다

  • 입력 2000년 11월 6일 19시 07분


학자가 노벨상 수상을 목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분명 올바른 학문적 자세가 아니다. 또한 노벨상 수상이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기 위한 충분조건도 아니다. 그러나 과학분야의 노벨수상자 숫자는 곧 국력, 좁게는 대학 및 연구소의 경쟁력과 명성을 대변한다는 사실이다.

국가별 통계를 보면 지금까지 과학분야는 전체 수상자 461명 가운데 미국이 192명으로 압도적으로 많고, 이어 영국 64명, 독일 61명, 프랑스 23명, 스웨던 8명 등의 순이다. 5명 이상을 배출한 나라의 대열에 G7 국가가 모두 포함된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학별로는 미국 하버드대가 25명으로 가장 많은 수상자를 배출했다. 다음으로 영국 케임브리지대, 미국 스텐퍼드대, 캘리포니아공대, MIT 등의 순이다. 연구소로는 13명을 배출한 독일의 막스플랑크 연구소, 6명을 배출한 미국 벨연구소 순이다.

과학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과학을 중시하는 문화풍토와 함께 기초과학의 하부구조가 견고하게 조성돼야 한다. 아울러 최소 3대에 걸친 학문의 역사가 필요하다. 기초학문의 토양을 구축하는 1세대, 구축된 토양 위에 나무를 심는 2세대, 그리고 새로운 발명과 발견의 열매를 맺는 3세대이다. 일찍 서구 과학을 받아들인 일본은 이미 3세대가 돼 올해 시리가와교수의 노벨화학상 수상을 포함해 지금까지 과학분야에서 모두 6명의 노벨 수상자를 배출했다. 우리나라 기초학문의 역사로 볼 때 우리는 지금 2세대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 세월이 지나면 열매를 맺는 3세대가 저절로 도래할 것이라고 예상한다면 큰 오산이다.

진정으로 한국이 새로운 발명과 발견의 진원지가 되기 위해서는 국민, 정부, 그리고 과학자가 맡아야 할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첫째, 기초과학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기초과학은 소수 과학자들만의 고상한 신선놀음이 아니고, 기초과학의 새로운 발견은 엄청난 기술혁명을 가져오며 나아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둘째, 정부의 기초과학 선진화를 위한 하부구조 구축에 대한 강한 의지와 이를 위한 지속적 지원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연구인력 및 연구비 규모로 볼 때 선진국에서 수행하고 있는 모든 분야를 연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이미 국제 경쟁력을 갖춘 과학자들을 엄선해 이들을 중심축으로 과학엘리트집단을 형성해 선진국 수준의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집중적이고 장기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역시 과학자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 세상의 가치관과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끈임없이 연구에 매진하는 학문에 대한 열정이 필요하다. 연구비 수주에만 혈안이 돼있고, 막상 연구의 질적 양적 수준을 높이기 위한 피나는 노력은 하지 않는 과학자가 늘어나다면 노벨상을 받을만한 업적은 고사하고 국민과 정부로부터 과학계가 영원히 외면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신성철(한국과학기술원 교수·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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