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동호/남북경협 거품걷고 차분히

  • 입력 2000년 10월 31일 19시 04분


최근 한 벤처기업의 불법적 행태가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고 있다. 이로 인해 벤처산업 전체가 위기에 빠져들고 있으며 정부의 구조조정작업조차 타격을 입고 있다. 한 기업의 잘못이 산업분야 전체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책의 내용과 일정까지 흔들고 있는 것이다.

▼수익성 면밀히 따져봐야▼

세상일이란 어디서나 마찬가지여서 남북경협에 있어서도 같은 우려가 제기된다. 벤처산업이나 남북경협이나 이제 체계적으로 시작되는 분야라는 점과 정부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시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남북경협의 목적은 무엇인가. 남북경협은 제3국과의 경제관계와 다르다. 따라서 단기적인 경제적 이익의 획득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남북한 사이에 경제교류 협력의 기회를 확대함으로써 긴장과 갈등관계를 해소하고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통일기반을 조성하는 데 더 큰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수익성을 무시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수익성은 더욱 중요한 문제다. 무리한 대북진출로 사업이 망하면 그 파급효과는 남북경협 전체는 물론 전반적인 남북관계 문제로 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현 단계에서의 대북진출은 그 어떤 사업보다도 면밀한 타당성 조사를 바탕으로 추진돼야 한다.

남북경협이 지난 10여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왜 아직 성과가 미진한가를 생각해보자. 정상회담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남북간 합의문이 없었기 때문도 아니다. 이유는 경협 현실에 있다. 대북진출에 따르는 고위험, 제도적 장치의 결여, 열악한 인프라, 사올 만한 물건도 사갈 능력도 없는 북한의 경제현실, 지나치게 높은 물류비, 북한 내수시장의 결여, 시장경제 메커니즘 및 국제 상거래 관행에 대한 무지 등이 남북경협의 발전을 가로막은 걸림돌인 것이다.

물론 남북정상회담은 이런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한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계기를 제공한 것일 뿐 아직 걸림돌은 그대로 남아있다. 걸림돌을 치우기 위한 실무 작업은 이제 시작되고 있고, 그 작업이 우리의 희망만큼 순조롭게 진행될지도 아직은 미지수다.

그런데, 너무 들떠있다. 마치 당장 남북경협의 탄탄대로가 열린 것 같은 분위기다. 경협 당사자인 기업은 물론 정부와 언론 모두가 너무 앞서가고 있다.

물론 남북경협이 빠른 시일 내에 획기적으로 발전된다면 그 이상 바람직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국민이 느끼게 될 실망과 좌절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도 엄청나게 부풀려진 기대 이후에.

좀더 차분해져야 한다. 최근 벌어진 북한에 보낼 겨울내복 사건이 재발돼서는 안된다. 사실은 불가능한데도 연내 착공을 발표하고 추진한 개성공단사업도 성급하다. 자금여력이나 경영능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까지 서둘러 북한행 열차에 타려고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도 주의해야 한다. 정부는 기업이 아니고, 정책은 사업이 아니다. 정책은 민간의 활동을 촉진하는 틀일 뿐이다. 당장의 가시적 성과에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즉각적인 성과가 없다고 해서 정책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정부는 하루속히 경협의 걸림돌을 치우는 작업에만 열중하면 된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끊어진 도로와 철도의 연결이나 제도적 장치 마련에 우선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바람직하다.

▼정부 제도적 장치 마련부터▼

다만 남북경협의 전망을 불필요하게 과장해서는 안된다. 벤처산업이란 대다수의 실패를 바탕으로 소수 기업만 성공을 거두는 것이 본질인데도 마치 벤처만이 우리의 살길인 양 지나치게 홍보한 것의 문제가 이제 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남북경협은 아직 탄탄대로에 접어든 것이 아니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벗어나 탄탄대로가 저만큼 보이는 곳에 이르렀을 뿐이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더욱 신중해야 한다. 물론 무조건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 다만 반드시 낙관적이지는 않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이번에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진정으로 남북경협을 발전시키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냉정하게 모색하자는 것이다. 남북경협은 이제 다시 출발선에 섰을 뿐이다.

조동호(한국개발연구원 북한경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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