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무료교실 운영 이철재 학익고교장

  • 입력 2000년 10월 31일 03시 47분


인천 남구 학익동 학익고 이철재 교장(60)은 일요일인 29일 오전 8시30분 평소와 다름없이 연수구 연수1동 인평신용협동조합에 도착했다. 그는 영어교재를 훑어보고 큰 소리로 발음연습도 했다. ‘과외수업’시간에 시민과 학생들에게 정확한 발음을 들려주기 위해서였다.

오전 9시. 협동조합 2층 회의실에는 초등학생 5명, 중학생 10여명, 고교생 5명, 대학생 3명, 주민 7명 등 30여명이 들어섰다. 그는 “굿모닝” 하며 수강생들을 반갑게 맞았다.

낮 12시까지 3시간 동안 진행되는 그의 ‘생활영어교실’에서 수강생들은 편안하게 웃고 떠들 수 있다. 그러나 우리말은 안된다. 영어만 사용해야 한다. 수강생인 조현수씨(42·회사원)는 “교장 선생님이 진지한 모습으로 영어회화를 가르치고 때로는 농담도 해 수업분위기가 아주 좋다”고 말했다.

영어교사 출신인 이 교장은 지난해 9월1일 학익고로 부임하자마자 이같은 ‘생활영어교실’을 열었다. 또 5월말에는 학익고 1학년 학생 490명과 함께 백령도 해병부대에서 2박3일간 ‘지옥훈련’을 받는 등 학생들의 정신교육에도 열성이다.

그는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스승의 참 도리라고 생각한다”며 “교장이라고 해서 일선에서 물러나 학교행정만 맡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이같은 영어교실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이 교장의 생활영어교실은 5년 전부터 시작됐다. 서해 최북단 섬 백령도의 백령종합고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한 95년 3월 영어교실을 처음 연 것. 영어학원을 구경할 수 없는 섬 학생들을 위한 배려였다. 이 덕분인지 97년 대학입시에서 이 학교 학생 40명이 대학에 진학하는 ‘백령도 최대의 경사’를 맞기도 했다.

96년 3월 그가 인천 연수구 옥련동 인송중학교로 옮겼을 때도 이같은 영어교실은 계속됐다. 그는 이 학교 1∼3학년 학생 25명에게 정규수업이 시작되기 전 70분간 진행한 ‘생활영어교실’에서 학생들에게 영어회화를 가르치는 것은 물론 격의없는 대화로 학생들의 고충도 살폈다.

사재 170만원을 들여 33인치짜리 모니터와 CD롬 생활영어교재를 준비하기도 했다.물론 그의 영어교실에는 수강료가 없다. 그는 “가정형편은 어렵지만 공부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을 위해 남은 여생을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인천〓박정규기자>jangk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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