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젊은이 관심사 집중해부하는 문화 무크지'통조림'

  • 입력 2000년 10월 22일 18시 31분


단행본인지 잡지인지 정체가 모호하다. 출간 일자도, 책 판형도, 내용과 형식도 출판사 맘대로. 이런 족보 없는 책이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출판동네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그것도 광고 한번 안내고, 지상에 소개 한번 안됐는데?

가·능·하·다. 문화 무크지 ‘통조림’ 시리즈(프로젝트409 간)의 성공이 증명한다. 서점에 깔리자마자 2만권이 팔린다.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데 정기구독을 신청한 독자가 6000여명에 달한다. 그리고 이 수치는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통조림’은 7권. 젊은이들이 관심을 끌만한 아이템을 다각도로 집중 해부하는 형식이다. 001호 다이어트, 002호 키치문화, 003호 섹스메뉴얼(임신과 피임), 004호 얼굴만들기(성형수술), 005호 벌레벌레벌레(환경), 006호 절대만화호(신인만화), 그리고 최근에는 007권 심리책이 나왔다.

‘통조림’의 모토는 ‘겉은 대중잡지처럼 재미있게, 속은 전공서 뺨치게 튼실하게’다. 최근 나온 ‘심리책’은 ‘인생사 첫끗발이다!’는 선언으로 말머리를 연다. 그리고는 프로이트와 라캉의 심리학 이론의 정수를 코믹하게 설명한다.

이론 학습 뒤에는 실전 훈련. 심리과학이 절실히 요구되는 ‘연애’와 ‘성공’ 비결 각론으로 들어간다. ‘연애도 과학이다’에서는 피타고라스도 못 푼다는 삼각관계의 해결법과 바람둥이 판별법까지 소개한다. 심순애가 왜 김중배를 택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명쾌한 대답이 여기 있다.

11쪽에 불과한 ‘성공심리학’ 부분은 서점에 넘치는 성공담 번역서보다 유익하고 재미있다. 과연 ‘돈을 확실하게 빌리는 과학적 심리법’을 건너뛸 자 누구인가. 재미로 페이지를 넘기다가 책을 덮으면 뿌듯한 포만감이 절로 밀려온다.

‘통조림’의 성공 비결은 이같은 색다름과 정성이다. 정형화된 틀 대신에 사진집, 도색잡지풍 등 아이템에 걸맞는 편집을 택하는 것도 별스런 특징이다. 페이지마다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 삽화와 일러스트도 일일이 직접 만든다. 최고의 품질이 돼야만 인쇄에 들어가고, 단 20쪽 짜리로 족하다면 억지로 페이지를 늘리지도 않는다. 무크지 형태의 ‘맘대로 출판’은 최고 품질을 위한 선택인 것이다.

그래도 가격 문제가 남는다. 1만원은 받아야 할 책인데 3800원은 상식 밖이다. 비밀은 책 뒤에 붙은 기업 광고에 있다. 책의 취지와 완성도에 감동받은 기업이 500만원부터 3000만원까지 후원금을 내고 있다. 적자에 허덕이는 출판계에서 벤치 마킹할만한 사례다.뜻밖의 사실은 ‘통조림’ 멤버들이 출판계가 아닌 광고계 출신이란 점. ‘프로젝트409’의 잡지팀을 이끄는 이명호 실장은 공익광고 부문에서 대한민국 광고대상을 2번이나 수상한 베테랑이다. 미술대학 교재로 쓰일 정도로 파격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는 미술팀은 홍익대 미대 출신의 젊은이들로 현재 광고와 인터넷 만화사이트 디자인을 병행하고 있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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