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음]이영섭 전 대법원장 별세

  • 입력 2000년 10월 11일 20시 08분


험난했던 한국 현대사는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이라는 자리를 정치권력으로부터 초연한 ‘양심의 최후 보루’로 놓아두지 않았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타의에 의해 물러난 대법원장도 5명이나 됐다.

11일 별세한 이영섭(李英燮)전 대법원장도 그중 한사람이었다. 이전대법원장은 81년 신군부 시절 대법원장직에서 물러나면서 “대법원장으로 재임했던 시절은 회한과 오욕의 나날이었다”는 유명한 퇴임사를 남겼다. 그의 퇴임사는 200자 원고지로 겨우 두장 정도였다. 그는 여기에서 사법부의 ‘부’를 한자로 ‘府’가 아닌 ‘部’로 표기해 ‘격하된 사법부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 아니었겠느냐’는 해석도 있었다.

고인은 78년 대법원장 권한대행을 거쳐 79년 3월 7대 대법원장이 되는 영예를 안았지만 재직중 유신정권 말기와 신군부의 집권과정을 거치면서 남다른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결국 박정희(朴正熙)전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金載圭)전 중앙정보부장에 대해 ‘내란목적 살인죄’가 아니라 단순한 ‘살인죄’가 적용돼야 한다고 소수의견을 냈던 대법관들이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는 이른바 ‘사법살인’이 자행된 직후인 81년 4월 2년여만에 대법원장직을 물러났다.

고인은 법관 재직시절은 물론 변호사로 일하던 98년까지도 부인이 직접 챙겨주는 도시락을 들고 다닐 정도로 청빈했다. 79년 둘째딸이 결혼할 때는 아무에게도 청첩장을 보내지 않아 비서조차 결혼식날 아침에야 알았다는 일화도 있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