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ASEM 개막공연 재일동포 지휘자 김홍재씨

  • 입력 2000년 10월 10일 19시 00분


일본에서 활동하는 재일동포 지휘자 김홍재(金洪才·46)씨. ‘무국적 난민’으로 자처하던 그가 요즘 온전한 조국을 되찾은 감격에 젖어있다.

오랫동안 꿈꾸던 서울 공연이 성사됐기 때문. 그것도 대규모 국제행사인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개막 축하공연에서 피아니스트 백건우씨와 협연하게 돼 기쁨이 더욱 크다.

지휘자 경력 20여년. 김씨는 일본 양대 지휘자상인 ‘사이토상’(79년)과 ‘와타나베상’(98년)을 모두 수상한 일본 최고의 차세대 지휘자로 유명하지만 그동안 ‘남쪽 조국’은 친북한 지휘자라는 이유로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는 그런 분류법을 인정하지 않는다. 해방 전 일본에 온 부친의 고향은 경북.

“65년 한일국교수립 후 한국국적을 선택하지 않으면 모두 북한계로 간주돼야 했지요. 그러나 내 조국은 분단 이전의 조선입니다. 음악의 세계는 남도 북도 없습니다.”

김씨는 대학졸업 이듬해인 79년 도쿄국제지휘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하면서 촉망받는 지휘자로 등장했다. 그러나 국적문제가 번거로워 해외유학은 포기했다.

그에게 새로운 음악세계를 열어준 사람은 독일에서 활동하던 작곡가 윤이상씨. 86년 ‘윤이상의 음악세계’콘서트에서 ‘교향곡 4번’을 처음 듣고 일본에 와있던 윤씨를 무작정 찾아갔다.

“서양음악에선 느낄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동서양의 독특한 조화, 아니 우리 민족의 정서를 일깨웠다고나 할까요.”

윤씨의 유학초청장을 받은 그는 89년부터 2년간 독일에서 공부하면서 윤씨와 함께 90년 평양 범민족음악회에 참가하는 등 한민족의 음악을 하나로 묶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일본에서는 그가 중심이 된 ‘한겨레콘서트’가 이미 10차례나 열렸다. 2002년까지는 재일동포로 구성된 ‘원코리아 심포니오케스트라(가칭)’를 만들 계획이다.

20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ASEM 개막공연의 협연작품은 부조니의 ‘피아노협주곡 1번’과 윤이상의 ‘무곡(舞曲)’. 그는 “연주가와 청중이 함께 만족할 수 있는 감동의 순간을 만들어내는 지휘자의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말했다.

<도쿄〓이영이특파원>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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