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에서 만난사람]목동 출신 美레슬러 가드너

  • 입력 2000년 9월 28일 18시 56분


‘젖을 짜고 꼴을 베던 목동’이 세계 레슬링 역사를 다시 썼다.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슈퍼헤비급(130㎏이상) 금메달리스트 룰런 가드너(29·미국). 그는 27일 열린 결승에서 ‘살아있는 전설’ 알렉산데르 카렐린(러시아)을 꺾고 정상에 올라 일약 세계 스타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카렐린이 누구인가. 올림픽 3연패, 7연속 세계선수권 우승, 13년 동안 국제 대회 무패, 10년 동안 단 1실점. 그 누구도 감히 누를 생각을 못했던 그야말로 무적. 우승 확률 100%라는 얘기까지 들은 카렐린을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던 그가 제압한 것.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자국의 사상 첫 야구 우승보다 가드너 스토리를 스포츠 섹션 톱으로 장식했다.

인구 1400명의 와이오밍주 에이프턴에서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가드너. 목장을 하는 집안 일을 도우며 힘들게 자라났다. 어려운 가정 환경 속에서 형 누나들이 모두 뿔뿔이 외지로 떠났으나 그만은 집을 지켰다. 주경야독으로 네브래스카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한 가드너는 대학 시절 미식풋볼 선수로도 뛰었으나 큰 덩치에 어울리는 레슬링에만 전념하라는 주위의 권유에 따라 ‘한 우물’을 팠다. 하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고 대학대회 무관에 이어 국제대회에서 입상조차 못했다.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도 출전 티켓은 꿈도 꾸지 못했다. 당초 미국대표는 96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매트 가파리의 선발이 유력했으나 지난 10년 간 카렐린에게 22전22패를 당한 가파리를 대신해 그가 낙점되는 행운을 누렸다.

최강 카렐린과 맞붙게 된 가드너는 불안했던 게 사실. 호주까지 응원 온 아내 스테이시는 “카렐린이 상대 선수를 불구로 만들었다는 얘기까지 들었다”면서 “제발 몸조심하라”고 걱정했다. 그러나 어릴 적 우유통을 나르고 젖소와 씨름하면서 기른 힘을 모두 쏟아부었던지 ‘시베리아의 불곰’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허약함을 보이며 무너졌다.

‘매트의 기적’을 이룬 가드너. 그는 “내가 카렐린을 물리쳤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김종석기자>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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