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Digital]'국제 변호사'는 어디에도 없다

입력 2000-09-21 19:10수정 2009-09-22 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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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변호사’ 바람이 불고 있다. 정계와 재계 법조계로 진출해 활발하게 활동하는 ‘국제변호사’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 정치인중에 ‘국제변호사’라는 직함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으며 일부 외국인 변호사들은 ‘국제변호사’를 자처하며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인기를 끌기도 한다.

‘국제변호사’를 꿈꾸며 미국 로스쿨로 유학을 떠나는 학생도 여전히 많다.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 대학에는 한국 유학생이 30명 가까이 되는데 그중 로스쿨 재학생이 6명으로 가장 많다. 서울 강남의 유학 학원에서는 로스쿨 특별과정을 개설해놓고 있으며 로스쿨 전문 인터넷 사이트도 등장해 성황이다.

그러나 정작 법조계에서는 “국제변호사는 없다”고 단언한다. 대한변호사협회는 97년 각 언론사에 공문을 보내 “‘국제변호사’라는 ‘정체불명의 용어’를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주문했다. 변협은 또 전화번호부에 ‘국제변호사’라고 이름을 올린 일부 외국 변호사 자격증 소지자들에게 “변호사 자격 사칭의 소지가 있다”며 경고장을 보내기도 했다.

실제로 ‘국제변호사’라는 용어는 법령이나 공식문서에서 사용되지 않는다. 변협의 한 간부는 “국제변호사라고 하면 미국 법정에도 가고 한국에서도 소송을 하는 국제적인 변호사를 연상하기 쉽지만 그런 변호사는 거의 없다”고 말한다.

법조인들은 ‘국제변호사’ 대신 ‘외국 변호사 자격증 소지자’ 또는 ‘미국 변호사’라는 명칭이 정확하다고 말한다. 외국변호사는 5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중 90% 이상이 미국 변호사다. 법률시장 개방에 대비해 국내로 들어온 교포 2세출신 미국 변호사도 상당수 있다.

그러나 이들 외국 변호사의 활동상과 지위는 개인차가 있다. 일류 로펌이나 투자회사 재벌그룹 등에서 ‘국제적인’ 업무를 수행하면서 고액의 연봉을 받는 변호사도 있지만 수십명에 불과한 실정. 일부 미국 변호사들은 번역과 영문자료 검색 등 국내 변호사들의 업무를 보조하는데 그쳐 ‘국제 법무사’로 불리기도 한다. 98년에는 미국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직업을 구하지 못해 해외이민 사기단의 브로커 역할을 하다 검찰에 적발된 일도 있다.

언어장벽 등으로 미국 현지에서 변호사로 성공하기는 더욱 어렵다. 지금까지 미국 로펌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파트너변호사(지분참여 변호사)가 된 경우는 윤호일(尹鎬一·법무법인 우방 대표)변호사등 10명 안팎에 불과하다.

법적 지위도 불안하다. 일본은 86년 특별법을 제정해 ‘외국법 사무변호사 제도’를 도입, 변호사 사무소 명칭 사용과 일본 변호사와의 공동업무 수행, 국제 상사중재인 업무수행 등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는 아직 외국 변호사의 정확한 수조차 제대로 파악이 안돼 있다. 서울변호사회 이진강(李鎭江)회장은 “외국 변호사 수가 급증하고 이에 따라 이들의 역할과 업무도 중요해진 만큼 이들을 변협에 등록시켜 활동을 양성화하고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조인들은 ‘국제변호사’의 실상을 정확히 알고 ‘꿈’은 갖되 ‘환상’은 버리라고 충고한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미국 로스쿨 프로그램▼

미국 변호사는 모두 로스쿨 출신. 로스쿨을 졸업하지 않으면 원천적으로 변호사 시험을 볼 자격이 없다.

우리나라 법학교육은 법과대학 4년(학사)과 법과대학원 2년(석사), 그 후의 박사과정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미국은 학부과정에 법학과가 없으며 대학원에 해당하는 로스쿨에서 법률교육을 전담한다.

로스쿨에서는 J.D.(Juris Doctor)와 LL.M.(Master of Laws) J.S.D.(Doctor of the Science of the Law)의 세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J.D.는 로스쿨 학생을 법률가로 양성하는 기본 과정으로 전반적인 법 지식을 3년간 배운다. 미국인은 LL.M.이나 J.S.D.학위를 취득하기 전에 반드시 이 과정을 수료해야 한다. 로스쿨의 가장 기본적인 과정이지만 한국 유학생들의 경우 언어장벽 때문에 가장 어려운 코스에 해당한다.

LL.M은 1년 과정이며 한국에서 법대를 졸업하거나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코스. J.D.과정중 18학점 정도를 골라서 수강하게 되며 수료자에게는 미국 변호사 시험 응시자격이 부여된다.

J.S.D.는 가장 높은 학위. 우리 나라의 박사학위에 보다 가깝다고 볼 수 있지만 미국의 법대 교수들 중에는 J.D. 학위만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박사학위 대신 법률 실무경험이 많고 유능한 사람이 주로 교수로 임용되기 때문이다.

▼'美변호사' 비용과 전망▼

미국 로스쿨 행을 꿈꾸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한국의 사법시험보다 변호사 자격증을 따기 쉽다는 점과 장차 한국의 법률시장이 외국 로펌에 개방된다는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변호사가 되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과 이후 한국에서의 전망을 따져 보면 그다지 ‘수익성’이 높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97년 8월부터 1년간 미국 하버드 로스쿨 LL.M. 과정을 거쳐 뉴욕주 변호사가 된 배금자(裵今子)변호사는 학비와 생활비를 합쳐 모두 5만달러(6000여만원)가 들었다고 말했다. 물가와 학비 변동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하버드 로스쿨에서 J.D. 3년 과정을 거쳤다면 1억8000여만원이 들어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에 비해 대학을 졸업한 사법고시 준비생이 고시촌에서 학원에 다니고 생활할 경우 한 달에 드는 돈은 많아야 80만∼100만원(연간 960∼800만원)정도.

고비용을 감수하고 한국에 돌아오더라도 전망은 불확실한 상황. 배변호사는 “대부분이 법률회사나 기업에 취직하려고 하지만 일자리가 많지 않다”며 “취직해도 일반적으로 한국변호사보다 대우도 좋지 않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한미에는 18명의 외국변호사 자격증 소지자가 일하고 있지만 미국 변호사자격을 취득한 한국인 유학생은 한 명도 없다. 김재훈(金載勳)변호사는 “단순히 자격증만 따온 한국인은 영어 실력도 부족하고 한국법과 미국법 모두 서툴러 고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미국변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한국에 돌아와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격증 취득후 미국에서 상당기간 일하며 충분한 영어실력과 법률실무를 익혀야 한다는 것.

하종선(河鍾瑄)변호사는 “법률시장이 개방돼 미국 로펌이 한국에 지사를 내더라도 한국과 미국을 두루 잘 아는 교포출신 미국 변호사를 채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김현(金炫)변호사는 “경제개방이 가속화되면 외국회사와의 계약과 협상의 법적 자문에 지금보다는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긍정적인 전망을 했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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