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주우진/지도층 각성이 경제 살린다

  • 입력 2000년 9월 18일 18시 38분


최근 진행되고 있는 경제 상황을 보면서 제2의 경제위기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일쇼크의 기준을 넘어선 유가 상승, 반도체 가격 하락, 주가 폭락, 벤처기업의 잇단 도산 및 코스닥 시장의 붕괴 조짐, 지속되는 금융기관 부실, 대우그룹의 구조조정 지연, 한빛은행 불법대출 수사 결과에 대한 의혹 등 내적 외적 요인이 경제에 대한 국민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경제가 위기에 처한 것은 외부환경 탓도 있지만 더 큰 책임은 우리 경제의 허약 체질이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이후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우리 경제가 허약 체질인 가장 중요한 원인은 정경유착을 비롯한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부정부패다. 정경유착으로 은행 대출이 왜곡되고 기아사태, 한보사태, 금융구조조정, 대우사태로 인해 투입되는 공적자금을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부담함으로써 기업이 잘 되면 기업주가 혜택을 보고 기업이 망하면 국민이 손실을 부담하는 불합리한 구조를 낳게 됐다.

뿐만 아니라 부실공사로 기업주는 부당이익을 챙기고 감독기관은 뇌물을 받고 묵인해 주는 경우 등 경제계에 만연한 뇌물의 먹이사슬은 어디가 시작이라고 하기조차 어렵게 복잡하게 얽혀 있다.

다음으로 우리 경제의 큰 문제는 신뢰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 한 증권사 광고는 고객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다른 회사의 ‘거짓말 펀드’를 암시하고 있다.

이런 광고는 우리의 간접투자시장이 얼마나 낙후됐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고객 예탁금에 대한 투자 수수료를 수익의 원천으로 삼는 회사가 부실 계열사를 지원하거나 이익이 나는 펀드를 그렇지 못한 펀드와 물타기해서 고객의 돈을 빼돌리는 등 합법을 가장한 부도덕한 금융 자금 유용이 만연해 있다. 뿐만 아니라 증시의 투명성 부족이 우리 경제의 대외 신뢰도를 하락시켜 합리성을 강조하는 외국인 투자 유치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증권거래소 시장의 기업들이 많은 이익을 내고 있음에도 주가가 계속 침체돼 있는 이유도 바로 이 투명성 부족 때문이다.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기업을 꺼리는 이유 중의 하나는 투자해도 주주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기업은 아직도 오너에 의해 자의적으로 경영되고 있고 이를 견제해야 할 이사회가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세번째 문제는 과소비 풍조이다. 경제가 조금 나아졌다고 부유층은 소비 향락 문화에 빠져 있다.

지난 봄 벤처붐이 한창일 때 서울 강남의 고급술집은 문전성시였고 고급백화점에서는 고가 수입품이 매출 신기록을 냈다. 과소비 풍조는 외화를 낭비하는 직접적, 물질적 피해보다 상류층과 지도층의 건전한 사회적 책임감을 기대하는 중산층과 근로자들의 일할 의욕을 꺾는 간접적이고 심리적인 피해 때문에 훨씬 더 크고 깊은 사회, 문화적 상처를 남긴다.

더욱 반성해야 할 일은 이런 문제를 발생시키는 주체가 사회지도층이라는 사실이다. 부정부패로 인한 도덕적 해이로 국민경제에 엄청난 피해를 준 것은 경제, 정치 및 관료 조직의 파워 엘리트이다. 또 고객의 신뢰를 저버린 펀드매니저나 소액 투자자들을 우롱하는 작전세력에 가담한 기업주는 대부분 명문대 출신이거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다.

지도층에 한 차원 높은 윤리기준을 요구하는 것은 이들이 바로 서야만 국가경제가 바로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도 싱가포르처럼 철저한 부패방지법을 실행해야 한다.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범국민적 캠페인도 벌여야 한다. 경제범죄는 형식적인 구속 및 집행유예의 예정된 수순을 밟기보다 실질적인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경제질서가 바로잡힐 것이다. 미국처럼 자본주의 원칙에 철저한 국가에서는 내부자 거래 같은 경제범죄는 반드시 실형을 살게 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우리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지도층의 각성과 정부의 부정부패 척결에 대한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3년이 채 안돼 다시 우리를 찾아온 경제위기를 거울삼아 필자를 포함한 우리 사회 지도층이 다시 한번 깊이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주우진<서울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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