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칼럼]유럽 '고유가 시위'의 의미

입력 2000-09-17 19:02수정 2009-09-22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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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지난주 단호한 모습을 보여줬다. 고유가정책에 항의하는 트럭운전사의 거센 시위에도 불구하고 유류세 인하 요구를 거절했다. 그 결과 주유소가 문을 닫고 슈퍼마켓에서는 생필품이 달리게 됐으며 진료마저 불편해지는 등 1979년 석유위기 때를 떠올리게 했다.

유럽에서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지만 영국에서는 지난 주말 한풀 꺾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블레어 총리는 정당한 행위를 했지만 원칙을 지킨 데 따른 값비싼 정치적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이번 영국 석유위기의 교훈은 블레어 총리와 노동당의 판단이 일반대중의 생각과 한참 거리가 멀다는 것을 보여준 데 있다.

다른 유럽국가와 비교할 때 영국의 석유 휘발유 경유 가격은 매우 높다. 하지만 유류세만 놓고 볼 때 그럴 뿐이다. 정부가 거둬가는 세금을 통틀어 보면 영국은 미국보다는 높지만 다른 유럽국가보다는 낮다. 영국은 유류세를 높게 하는 대신 일반판매세나 소득세는 낮게 했다. 따라서 유류세를 낮추면 결국 다른 세율을 높여 세수를 보충할 수밖에 없다.

유류에 유독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영국의 교통혼잡은 미국보다 훨씬 고질적이다. 유류세를 높여 운전자로 하여금 차를 덜 이용하도록 유도해 교통혼잡을 줄이자는 사회적 목표를 달성하고 세입 증대도 꾀하자는 것이다.

세계의 석유위기에 직면해 당장 유류세를 낮추는 것은 아주 위험한 구상이다.

만약 블레어 총리가 고유가정책에 항의하는 시위에 굴복해 유류세를 낮추었다면 그는 다른 이해집단한테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파괴적인 시위가 어떤 방법보다 효과적인 정치적 압력 수단이란 점을 인정했다고.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영국인은 시위대를 지지하고 있다. 이는 유럽의 다른 국가도 마찬가지다. 고유가에 항의하는 시위자들은 왜 광범위한 정부대책을 요구하는가. 보수주의자들은 이번 시위를 전반적인 납세거부 운동으로 믿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나 실은 세금에 대한 반란이 아니다. 시장에 대한 반란이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영국 등지에서도 잇따라 고유가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진 것은 무엇을 시사할까. 그것은 새 천년을 맞은 현재 ‘자유시장경제’라는 이데올로기를 주축으로 하는 서구 정치경제의 모습이 생각보다 훨씬 불완전하다는 점이다. 현재의 시장 시스템이 때때로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일반인들은 이런 불공정한 시장에 항의해 시위가 벌어지자 비록 그 시위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해도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정리〓백경학기자>stern10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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