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축구]홍명보, 부상회복 기미없자 '아름다운 양보'

  • 입력 2000년 9월 13일 18시 39분


홍명보에게 지난 며칠간은 결코 짧지 않은 자신의 축구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와일드카드로 팀의 기대를 잔뜩 모았는데 현지까지 와서 못 뛰게 된다면….’머릿속엔 갖은 상념이 교차했고 후배들의 얼굴을 보기도 민망했다. 결단을 내리기도 그만큼 힘들었다.

지난달말 나이지리아와의 2차 평가전에서 다친 오른쪽 장딴지 윗부분 근육을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시간이 경과하면 금방 나아지리라 믿고 애들레이드행 비행기에 가볍게 올랐다. 의욕도 높았고 마음가짐도 남달랐다.

그러나 막상 현지에 도착하자 비바람과 함께 추운 날씨가 계속되면서 근육은 오히려 굳어져 갔다. 가벼운 달리기는 괜찮은데 방향 전환이나 킥을 할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다.

9일. 이대로 가다간 위험하다는 판단이 섰고 약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11일 대회조직위원회가 준비한 진통제 주사를 맞고 허정무 감독에게 “내일 아침 경과를 보고 최종 결단을 내리겠다”고 보고했다.

그 날 밤은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전전반측하다 겨우 잠을 청한 것이 12일 오전 3시. 이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상황은 한치도 나아지지 않았다. 진한 아쉬움과 함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저 못 뛰겠는데요.” 그의 최종 판단을 듣는 허감독의 얼굴은 굳어졌다. “개인적으로 욕심도 있고 책임감도 있지만 나 때문에 팀이 더 이상의 피해를 봐서는 안됩니다. 지금이라도 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다른 선수로 교체해 주십시오.” 홍명보의 설명이 이어졌다.

허감독은 홍명보가 그래도 빨리 결단을 내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개인적인 욕심 때문이나 안팎의 눈초리가 두려워서 질질 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는 것.

‘용기 있는 퇴장…’. 비록 뛰지는 못하지만 ‘대선수’ 홍명보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 까닭은 이런 이유에서다.

<애들레이드〓올림픽특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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