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리뷰]파파 로치의 데뷔 앨범 「Infest」

  • 입력 2000년 9월 5일 11시 28분


'첨단'의 하드코어와 '고전'적 메탈 사운드의 '원초적' 만남'

아무래도 난 빠르게 질주하는 강력한 일렉트릭 기타 연주를 너무 좋아하나 보다. 간단 명료한 리프, 거침없이 쭉쭉 뻗어나가는 일렉트릭 기타 연주를 듣는 순간, 오랜만에 들어보는 '정통 메탈적' 기타 연주에 귀를 쫑긋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파파 로치'의 첫 싱글 'Last Resort'였다.

MBC FM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처음 소개되는 'Last Resort'를 듣자마자 곧바로 파파 로치의 CD를 주문했다. 집으로 배달된 '파파 로치'의 CD 재킷에는 'Parental Advisory Explicit Content'라는 문구가 인쇄돼 있었고 케이스에는 국내 음반사가 붙인 '연소자 이용불가'라는 빨간딱지가 붙어있었다. 'Parental...'은 '부모님의 자문과 조언이 필요한 적나라한 가사내용' 정도로 해석되는데 국내 음반으로 치면 18세 미만 청소년들에게 판매가 금지됐던 조PD 2집이나 역시 '빨간딱지'가 붙었던 DJ DOC의 최근 앨범쯤 된다고 보면 된다.

예전부터 미국에선 이른바 '학부모 협회'의 세력과 입김이 아주 강력해서 청소년에게 '유해한'(?) 가사가 담긴 음반들에 대해서는 'Parental Advisory...'라는 문구를 아예 앨범 재킷에 인쇄하도록 했는데 그 동안 헤비 메탈 그룹들의 음반이 이 문구의 '단골 고객'이었다.

그런데 파파 로치의 「Infest」는 이른바 '빨간딱지'가 붙어있는 앨범으로는 그 가사내용의 강도가 그리 심한 편은 아니다.18세 미만 청소년들이 볼 수 있는 각종 폭력, 오락영화들의 '거친' 장면들에 비한다면야 그 강도는 '새 발의 피' 정도가 아닐까? (어쩜 이건 내가 가사내용을 두리뭉실하게 해석해서 그 강도를 과소평가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사람들 안에 있는 모든 감정들을 끄집어내고 싶다' '사람들은 달콤한 사탕이 발라져 있는 BS(브리트니 스피어스를 가리킴)의 음악에 만족해왔다. 그러나 사람들은 실제적 차원에서 접촉할 뭔가가 필요하다. 우리는 실제 삶 속에서 처리하기 어려운 이슈들을 정면으로 다룬다'. 보컬리스트 코비 딕(Coby Dick)의 가사처럼 파파 로치의 한 곡 한 곡은 마치 각종 사회 문제들을 유형별로 섹션화해서 다룬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첫 싱글 'Last Resort'는 코비 딕의 고교시절 룸메이트의 실제 얘기로 한 청년의 자살충동을 그렸고, 'Broken Home'은 이혼문제를, 'Binge'는 알코올 중독에 관해 다루고 있다.

전반적으로 여러 가지 부조리로 인해 사회로부터 상처를 입고 점차 적응력이 떨어져 가는 미국 젊은이들의 심리 상태를 반영하고 있다고 할까.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많은 호응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Infest」앨범은 최근 빌보드 앨범 차트 TOP 5에 랭크된 바 있다)

미국의 한 신문은 파파 로치의 음악에 대해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 이하 RATM)의 음악을 재해석해서 연주하는 밴드'라는 평가를 내렸다. 앨범의 첫 곡 'Infest'만 들어봐도 이들의 음악에서 RATM을 떠올리는 건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파파 로치에게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이들이 물론 하드코어 랩을 들려주긴 하지만, RATM처럼 랩에만 치중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파파 로치는 랩과 멜로딕한 면의 팽팽한 균형과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랩과 보컬을 종횡무진 오가는 코비 딕(Coby Dick)의 역량과 매력이 살아있다.

거기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런지(Grunge) 열풍, 하드코어의 강세에 따라 설 곳을 잃어 거의 소멸되다시피한 이른바 '정통 메탈'적인 연주와 분위기를 파파 로치는 다시 되살리고 있다.서두에 언급한 대로 필자를 한 순간에 매료시킨 제리 호튼(Jerry Horten)의 기타 연주, 웅장한 스케일과 하드록에 기반을 둔 하드코어 형식 등은 예전 헤비 메탈팬과 요즘 하드코어팬 모두에게 매력으로 다가올 만한 미덕이다. 더구나 이들의 음악에선 잉베이 맘스틴(Yngwie Marlsteen)으로 대표되는 바로크 메탈적인 클래시컬한 면이 느껴지는가 하면, 최근 몇 년간 돌풍을 일으킨 '스카' '펑크'의 요소까지 담겨있다.

RATM의 음악을 좋아하지만 기타연주, 보컬의 강력함, 스트레이트함, 멜로딕함에 있어서 뭔가 허전하고, '림프 비스킷(Limp Biskit)' '키드 락(Kid Rock)' '콘(Con)' 등의 음악은 소화하기가 좀 힘들고, 브릿 팝(Brit-Pop)은 다소 싱겁다고 생각되는 분이 있다면, 대안은 파파 로치이다.

김윤미(음반 칼럼니스트)

*30자평: '부모님의 자문'이 필요한 '거친' 가사? 그러나 거침없는 통쾌한 메탈 사운드. 평점:★★★★☆ (★5개 만점)

♬ 노래듣기 : Inf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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