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네오싱글族'이 뜬다…"결혼보다 내생활"

  • 입력 2000년 9월 3일 18시 47분


PC통신회사에서 일하는 정혜림대리(30·여). 하루 24시간이 짧다. 세탁기 토스트 등이 갖춰진 원룸주택에서 독신자용 인터넷 슈퍼마켓을 클릭, 식사와 생필품을 해결한다. 결혼생각은? 없다.

외국계 정보통신회사에 다니는 전재민씨(30)도 마찬가지. 직장근처 원룸에 살면서 수입의 70% 이상을 여가와 쇼핑에 쓴다.

“저축이요? 노후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만 합니다. 결혼이나 아이를 좋아하긴 하지만 꼭 내가 낳아 키울 필요는 없잖아요. 나중에 입양할 수도 있고요.”

새로운 독신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이름하여 ‘네오(新)싱글족’. 결혼을 ‘못해’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던 이전의 독신자들과는 달리 탄탄한 경제력과 디지털 활용능력을 갖추고 자신들만의 독신문화를 만끽한다.

이들의 소비성향과 능력을 간파한 사업자들이 독신자전용 원룸아파트와 인터넷쇼핑몰을 속속 만들어내는 등 ‘네오싱글족 특수’가 일고 있다.

서울 강남지역에는 이들의 경제수준과 세련된 취향에 맞춘 고급 원룸아파트 건설이 붐이다. 지난달 분양된 서초구 반포동 두산 힐스빌은 15∼27평형이 평당 600만∼730만원의 높은 분양가에도 불구하고 일주일만에 동이 났다.

이 업체 관계자는 “고소득 독신자들의 취향에 맞춰 화이트톤으로 내부마감을 하는 등 신경을 썼다”며 “경제력 있는 독신자나 이들에게 세를 놓으려는 임대사업자가 계약자의 80% 이상”이라고 말했다.

또 독신자용 고급 소형아파트가 강남지역에서 최근 1, 2년새 1000여 가구 이상 분양됐다. 올해 말까지는 1000가구 이상이 추가 분양될 예정이다.

컴퓨터와 인터넷도 네오싱글족의 삶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인프라’. 독신여성 전용사이트 ‘싱글라이프(www.singlelife.co.kr)’처럼 독신자에게 생활정보를 제공하는 웹사이트, 삼성몰(www.samsungmall.co.kr)의 인터넷 후레쉬마트처럼 독신자가 주고객인 사이버 쇼핑몰도 속속 등장했다. 이곳은 박스단위로 판매하는 대신 쌀 1㎏ , 오이 2개 등 모든 상품을 낱개로 팔아 매일 5000여명의 독신자가 방문할 정도.

독신자 인터넷사이트 솔로베이(www.solobay.com)가 최근 회원들을 대상으로 독신이유를 묻는 설문조사를 한 결과 ‘결혼의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42%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네오싱글족이 화려한 장밋빛 나날만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독신자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도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이화여대 사회학과 함인희(咸仁姬)교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나’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독신이 새로운 생활양식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며 “삶의 다양성을 확대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나 보이지 않는 편견이 많고 모든 제도가 기혼자 위주인 한국사회에서 ‘네오싱글족’이 서구처럼 뿌리를 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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