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인터뷰]신해철 인터뷰, "이제 이야기꾼으로 돌아간다"

  • 입력 2000년 8월 23일 14시 06분


미국 뉴욕에서 음악작업을 해오던 신해철(33)이 지난 8월17일 한국으로 돌아왔다. 오는 25일부터 3일간 서울 회현동 '메사' 팝콘홀에서 그가 이끄는 록그룹'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의 데뷔공연을 위한 '짧은 귀환'이다.

공식적인 인터뷰를 사양한 채 무대 준비에 열중이던 그를 조르고 졸라 지난 22일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저녁 6시 팝콘홀 뒤편에 마련된 자그마한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군용침낭에 묻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아무렇게나 풀어헤쳐진 머리, 며칠이나 면도를 미뤘는지 덥수룩한 얼굴로 그는 기자와 마주 앉았다. '넥스트' 시절의 그가 재기넘친 로커였다면 지금의 신해철은 30대에 접어든 중견 뮤지션으로 변해있었다. '모든 것을 초월한 가객의 모습'으로.

▶요즘 근황은?

즐겁게 산다. 일산에 32평짜리 전세집도 있고, 넉넉하지는 않지만 먹고 사는데 지장은 없다. 미국은 물가가 비싸니까 뉴욕 근교에 거처를 마련해 생활하고 있다. 마음 편하게 음악 작업을 하고 있으니 이 정도면 행복한 것 아닌가.

▶'비트겐슈타인' 콘서트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다.

우연한 기회에 재미교포 데빈과 리(기타)를 뉴욕에서 만나 함께 팀을 꾸리게 됐다. 모두 걸출한 작곡능력과 연주실력을 갖췄다. 함께 합숙을 하면서 노래를 만들었다. 이번 공연에서 넥스트 활동 당시의 노래와 신곡 6곡 정도를 선보일 예정인데, 전체적으로는 70년대 록과 비슷한 복고풍 음악이다. 새 앨범에 수록할 일부를 공개하는 것이다.

▶새 앨범은 언제 나오고 어떻게 꾸며지나?

9월말이나 10월초에 음반을 발매할 예정인데 2장으로 만든다. 한 장이 복고적인 록 음악이라면 나머지 한 장은 2000년대 스타일로 꾸며진다. 후자의 경우 테크노를 포함한 최신 음악 장르가 뒤섞인 사운드라 할 수 있다. 음악 성격이 극과 극을 달리는 관계로 따로 음반을 발매할 생각이다.

▶신해철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한다면.

'테크놀러지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났다는 것. 10년 동안 매뉴얼을 뒤져가며 레코딩, 믹싱 공부를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 순간 지난 60~70년대를 호령했던 '비틀즈'가 눈에 확 들어왔다. 테크닉 보다 음악이 중요함을 알게 됐다고나 할까. 그리고 '이야기꾼 신해철'을 원하는 팬들을 위해서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를 노래로 옮기고 있다.

▶사실 99년 4월 크롬 독집을 발매할 당시 영국 진출이 가시화되는 듯 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됐나?

사람들은 외국에 나간다고 하면 '언제 빌보드 차트에 오르는지'를 묻는다. 미국, 영국 시장은 차원이 다르다. 동양인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해야하고, 마이너에서 일정 기간 활동하면서 주목을 받아야 한다. 일단 가능성은 인정받고 있다. 메이저 진출 시기는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최소한 외국에서 어떻게 활동을 해야 하는지의 정보라도 터득하면 그만이다. 서두르지 않겠다.

▶외국과 우리 대중음악계를 비교한다면.

남의 나라에 사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하지만 배울게 분명히 있다. 특히 '뮤지션과 대중이 깨어있다'는 점이 부러웠다. 음악성이 있는 가수는 대중이 외면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해적판이 음반 시장의 50% 이상을 점령했고, 국내 뮤지션에 대한 대중의 배려가 전혀 없다. 정규 음반을 사지 않으면 가수는 죽는다. 댄스 음악을 천시하고, 표절 운운하면서 해적음반을 구입하는 대중도 가해자다. '방송이 댄스 일색'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대중이 깨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거의 모든 가수들이 씹히고 있다. 거의 인신공격 수준이다. 솔직히 뭐하나 도와준 것도 없으면서, 음악에 대한 지식도 없이 욕을 한다. 한마디로 싸가지가 없다. 그나마 최근 음악을 즐겨듣던 사람들이 직접 기타를 들고 노래하는 언더 뮤지션이 많아졌다는 점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데뷔한 지 올해로 11년째다. 돈은 많이 벌었나?

그 동안 500만장을 팔았는데 남은 건 별로 없다. 솔직히 나도 돈 벌고 싶다. 하지만 붙잡으려해도 떠나가는 게 돈 아닌가. 20대 때는 큰 집에 살아보고 좋은 차도 타보고 딴따라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해본 것 같다. 다만 요즘 가끔씩 제작비가 떨어졌을 때 아쉬움을 느낀다.

▶음악 프로듀서로 활동하면 안정적인 생활이 되지 않을까?

과연 히트곡을 낼 수 있을까(웃음). 물론 애를 쓰면 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현실에 안주할 시기는 아니다. 몸 건강한데 직접 노래하고 무대를 뛰어다녀야지.

▶후배 가수를 양성해야할텐데.

프로의식을 갖고 음악에만 몰두 할 수 있는 자유로운 팀을 찾고 있다. 이번 공연에 드럼과 베이스 주자로 참여하는 '원 핫도그네이션'을 비롯해 3팀 정도를 데뷔시킬 생각이다.

▶요즘 가요계를 평가한다면?

모든 음악이 좋다. 댄스 음악을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댄스는 그 장르대로 커나가면 된다. 가수는 많을수록 좋다. 시장이 커지면 다른 장르도 힘을 얻게 된다고 믿는다.

▶서태지 컴백을 어떻게 생각하나?

개인적으로 태지가 은퇴했을 때 '자신의 의무를 방기했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돌아온다니 당연히 반갑다. 그와는 마음이 통하는 사이다. 같은 필드에서 뛰게 됐음에 힘이 된다. 태지가 좋은 음악을 하길 바란다.

▶앞으로의 활동계획은?

'비트겐슈타인' 팀의 일원으로 10월경 귀국해 한시적으로 활동한 뒤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20년 계획의 하나인 미국 진출도 한 단계씩 밟아나가야 하니까. 그리고 올해 안에 신해철의 개인 생각을 담은 에세이집을 낸다.

▶대중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뮤지션은 1위 트로피를 받거나 돈을 많이 벌었을 때 기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음반이 막 구워져 나왔을 때의 희열로 사는 것이다. 하지만 '잘 먹고 잘 살자'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자'는 패러다임이 우리 대중 사이에 팽배해 있다는 느낌이다. 가요에 대한 진지한 애정을 가져주기를 희망한다.

▶결혼할 나이인데.

결혼한 친구들이 자식 사진 보여줄 때가 제일 부럽다. 세상을 다 가진 거나 마찬가지니까. 나도 가족을 갖고 싶고, 자식과 함께 놀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도망다닌다. 가족이 생기면 나는 음악에 전력투구할 자신이 없다.

황태훈 <동아닷컴 기자>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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